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 정유정 <진이, 지니>
보노보
영장목 서성이과에 속하는 유인원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DNA(98.7% 일치)를 가졌으며, 학계 일부에서는 현존하는 세 영장류(침팬지, 인간, 보노보)의 '원형'과 가장 닮은 꼴로 본다. 침팬지보다 체구가 작지만 공감 능력은 훨씬 뛰어나며, 온순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이고 다소 공격적이며 수컷 중심 사회를 이루는 침팬지와는 달리, 연대와 평화를 중요시하고 암컷 중심 사회를 이룬다. 무리 간의 성생활이 자유롭고, 성을 연대와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특성을 갖는다. (p.6)
요렇게 생긴 넘이다. 보노보라는 동물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암컷 중심 사회를 이룬다고? 그래, 그게 맞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는 모계 사회가 부계 사회보단 훨씬 낫다. 여자가 남자의 집에 시집을 와서 사는 게 아니라 남자가 여자의 집에 장가를 들어 살면 지금보다 훨씬 부드러운 세상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성을 소통과 연대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니 이렇게 지혜로울 수가. 인간도 그게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 출처 :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1001
정유정의 소설이면 그냥 닥치고 읽는다. 전작의 충격이 굉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다음 장면이 나오는 게 조마조마해서 읽기를 잠시 멈추게 하는 어마무시한 능력을 지녔다. <28>과 <7년의 밤>이 그랬다. <종의 기원>에서는 싸이코패스라는, 내가 소화하기 힘든 넘이 나와 좀 당황했지지만 서사 자체 만큼은 빨랐고 충격적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썼을까 궁금해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백수 남자와 사육사 여자, 그리고 보노보 한 마리. 이 주인공이 각기 평행선을 걸으며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다 이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에서 여자의 정신이 보노보의 육체에 빙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뭐야, 이거, 판타지 소설인가!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읽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보노보의 몸으로 들어간 여자는 당황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백수 남자는 보노보의 형상을 한 여자를 돕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자는 다시 몸을 찾았을까? 보노보의 원래 정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백수 남자는 그녀를 도와준 댓가로 무엇을 얻었을까? 결말은 뻔하지 않다. 식스센스 급 반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동물과 사람과의 교감, 사람과 사람과의 공감 등 여러 생각거리와 함께 살아야겠다는 의지도 던져 준다.
타인의 기쁨에 기뻐하고, 타인의 아픔에 아파하는 것.
이것이야말고 인간을 이끄는 최고의 지도자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작품 해설 첫 단락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래,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하는 사람들마다 이제 공감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공감이라는 게 별 것 있나? 상대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해주고, 상대가 아파하면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는 게 공감이지. 제러미 리프킨은 심지어 공감 능력을 키우려면 공감을 받으면 된다고도 했다.
근데, 공감이라는 게 사실 쉽지가 않다. 누구나 쉽게 하는 거라면 이렇게 대놓고 담론의 거창한 화두가 되지 않았을 거다. 안되니까 이게 중요해진 것이고 필요한 것이 되었지. 다른 이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주는 것이 참 어렵다. 조금만 생각하면 상대가 말하는 참뜻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 그냥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 게 편하다. 그래서 공감의 세상은 점점 멀리 달아난다.
여자는 7개월 전에 킨샤샤에서 보노보를 만났다. 보노보는 갖혀 있었고 구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파인애플 조각만 주고 나왔지만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백수 남자는 집에서 '간장 종지'라 불렸다. 그 만큼 쓸모가 없어서 붙여졌다. 결국 집에서 쫓겨나고 점점 삶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둘은 보노보를 매개체로 만나 서로를 알아 가게 되었고 서로에게 공감했다. 남자는 보노보의 몸에 갇힌 여자와 대화를 거듭하며 '간장 종지'의 트라우마와 컴플렉스를 뛰어 넘었고, 더 나은 존재로 발전했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작가의 말 첫 문장이다. '바다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준비하다 어떤 문장에 사로 잡혀 여태 준비해온 이야기는 던져버리고 보노보의 몸 안으로 영혼이 빨려들어간 사육사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래, 계획대로 진행되는 삶이라면 그건 삶이 아니거나 무지 재미없는 삶이다. 그렇기에 곁에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사람, 그런 이가 곁에 있다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이라도 제법 괜찮을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오랜만에 숨가쁘게 읽힌 소설이다. 날렵하고 따스하고 뭉클하다. 정유정의 화려한 귀한이라 할 만 하다. 그나저나 야생으로 돌아간 보노보는 잘 살고 있을까? 백수 남자는 '간장 종지'를 벗어나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남은 그들, 부디 남은 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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