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해지지 말고, 지치지 말고 :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예를 들어 어떤 꿈들인가?
우선은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었지. 제목은 사슴이면 좋겠고.
그건 이뤄졌고. 그 다음은?
시골 학교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면 싶었고.
촌동네 소반처럼 소박하네. 그리고?
착한 아내와 함께 두메에서 농사지으며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하지.
또?
그게 다야. (p.223)
오래 전에 젊은 시절 시인 백석의 흑백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와, 진짜 잘 생겼네." 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시는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고는 "이야, 야반도주를 이렇게 하자고 하면 따라가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하고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시집을 내고, 시골 학교 선생이 되고, 착한 아내와 두메 산골에서 책 읽으며 살고 싶어했던 백석, 촌동네 소반처럼 소박한 꿈을 가진 시인 백석의 삶을 이 책에서 엿보았습니다. 혹독한 시절에 아름다운 언어를 보듬으려 했던 그의 삶을요.
책의 배경은 기행(백석의 본명)이 살던 북한이며 1957년에서 1963년까지 7년입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러시아에서는 개인숭배와 독재 아래에서 자행된 숙청과 학살 등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56년이 되자 스탈린 격하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북한에서도 최창익, 박창옥 등이 김일성 일인 독재에 대해 비판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이들을 바로 숙청했고, 일인 독재 체제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러니까 1957년의 북한은 오직 당과 김일성만 있는 사회였습니다. 문학계라고 예외는 없었습니다. 이 사회는 기행의 사상을 의심하며 찬양시를 강요했습니다. 기행의 친구인 상허 이태준을 '반인민적 작가'라고 날려버렸습니다. 북한은 이제 시궁창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기행은 반론도 제기하는 등 나름 노력을 해보지만 결국 량강도 삼수라는 오지의 노동 현장으로 보내집니다. 기행의 나이 마흔여섯 때의 일입니다.
해방 후 새로 등장한 젊은 문인들이 상허를 반동사상에 물든 작가, 소위 '순수문학'에 향수를 느끼는 작가, 반인민적이고 해독적인 작가로 몰아붙인 것이야말로 아이러니였다. 전쟁이 멈춘 뒤 몇 년 동안 셰속된 사상 검토의 잔인함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건 매일 오전 일과 시간이 시작되기 전이나, 오후부터 밤까지 사람을 단상에 세워놓고 스스로 가장 믿어 의심치 않는 바로 그점을 부인할 때까지 자백을 강요하는 일이었다. (p.86)
책의 저자인 김연수 작가가 동네 책방인 <생의 한가운데>에 왔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작가는 첫 인상도, 말하는 솜씨도 소박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선배로부터 백석의 시집을 선물받았고, 그의 시에 푹 빠졌다는 얘기와 소설을 쓰면서 알게된 시인 백석의 모습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쓰고 싶은 시를 쓰지 못하는 시대에 좌절하는 기행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슬픔에 불타버렸고, 불타기 전의 세상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예감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묻는 기행에게 이천육백 년 전의 시인이 대답했다. 그 까닭은 우리가 무쇠 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시대에 좌절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운명에 불행해지고 병들더라고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고.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p.172)
소설 초반에 고려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인들을 믿지 못하는 스탈린이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습니다. 열외 없이 강제로요. 몇 날 며칠을 기차로 이동해서 황량한 들판에 내린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얼마전 읽은 박시백의 <35년>에서 그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 주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를 도와준 카자흐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에게 물어보니 실제 그랬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랬었군요.
그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쫓겨난 한인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 카자흐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동쪽에서 정체불명의 낯선 민족이 화물칸에 실려와 황야에 버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빵을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빵이 식을세라 모포에 감싸 당나귀에 실은 뒤, 한번도 만난 일이 없는 그들을 찾아왔다. 한인들이 울면서 그 빵을 먹는 동안, 카자흐 여인들도 울음에 합세했다. 빵과 울음, 새로운 삶이 거기서 시작됐다. 그들은 톈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모여 이뤄진 강물을 젖줄 삼아 땅을 일궈 다시 일어섰다. (p.95)
찬양시를 쓰라는 당국의 요구를 버티다 결국 기행은 삼수의 노동 현장으로 갑니다. 거기서 기행은 시를 쓰지만 모두 불태웁니다. 소설에 그런 구절이 나와서, 아름다운 언어를 골라 남겨놓았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 봤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작가는 말했습니다. 남아있는 시는 없다는 군요. 아쉽습니다.
어차피 아침이면 재로 돌아갈 문장들이어서 기행은 거리낌없이 써내려갔다. 원하는 만큼 편지를 쓴 뒤, 기행은 연필을 내려놓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쓰고 나니 비로소 기행은 살 것 같았다. 기행은 편지를 쓴 페이지를 찢어 난로 속으로 던져넣었다. 불꽃이 일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기행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p.205)
삼수로 간 이후부터 기행은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혹시 썼다하더라도 남아 있는 건 없습니다. 작가는 오히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기행의 시를 즐겨 읽는다고 했습니다. 만약 시대의 요구에 응해서 수령과 당을 찬양하는 시를 썼더라면, 기행과 그의 시의 가치가 지금처럼 높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행은 자신의 미래를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온 국민이 그의 시를 즐겨 읽는 미래를요.
마흔여섯 살, 기행이 삼수로 간 나이입니다. "이제 끝이다. 나는 이제 거의 끝났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다시 일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갔을 테지요. 삼수로 간 이후에 그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여든네 살까지 살다 세상을 떴습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거죠.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나이가 마흔여섯이라고 했습니다. 동갑의 작가가 시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소설 속 시인이 삼수 오지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소설은 백석이 삼수에서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며 살았다로 끝이 납니다. 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설사 진실은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백석이 혹독한 시대와 어려운 환경을 만나 자신에게 했던 말입니다. 절필 이후에 40년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살았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고, 냉담하지도 말며 지치지 말자. 비단 백석 뿐만 아니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런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나는 백석의 이 말로 위로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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