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읽을 수 없다면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고백하건데 김초엽 작가는 이름도 생소했을 뿐더러 북콘서트에 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김해시에 등록되어 있는 독서모임은 의무 참석이라는 협박?이 와서 신청했고, 그래서 책도 샀더랬습니다. 빛의 속도로 책을 읽고 빛의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율하도서관에 갔습니다.
스물댓 명이 참석했습니다. 근데 모두 여잡니다. 사람 모이는 자리는 원래 불편해서 잘 가지 않는데, 청중도 여자고 작가도 여자고, 남자라곤 사회를 보는 이와 시에서 나온 관계자처럼 보이는 사람 뿐입니다. 이거 어떡할겁니까. 갑자기 불편해졌습니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강의가 막 시작할 무렵에 나이가 좀 있으신 남자 청중이 한 분 들어오시더군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작가는 아직 소녀티를 완전히 벗겨내지 못한 아가씨였습니다. 그냥 그 또래의 평범한 여자라는 인상입니다. 말하는 것도 대학생 같았습니다. 작가는 비단에 옥구슬 굴러가듯 말도 잘할거라는 편견을 사정없이 부셔줍니다. 뭔가 좀 서투른 북콘서트입니다. 근데, 이게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서투름이 진정성으로 다가옵니다.
소설은 소외와 결핍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먼 미래에도 이것들은 여전히 우리의 곁에 딱 붙어 있습니다. 웜홀로 우주를 누비는 시대의 기술로도 이건 해결이 안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 그리고 그 벽을 기어이 넘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책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가까이 하면 힘들고, 그렇지만 가까이 하고 싶은 인물들이 꽤나 나옵니다. 쓰고 보니 우리 마눌님 같은 존재네요ㅋㅋ.
7개의 소설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의 특징, 롤모델, 그 주인공이 나오게 된 배경도 말해줍니다. <공생 가설>이라는 소설은 '양육가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양육가설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유전자와 부모'라는 기존의 사고 방식을 무참히 깨어버리는 이론을 말합니다. 그럼 뭐가 중요하냐? 또래 집단이 제일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합니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씨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썼다고도 했습니다.
작가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용이 훨씬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으며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드네요. 책은 읽는 이에 따라 다 각각의 해석이 가능하니까요.
소설은 공부다 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 잘 쓰는 법'이라는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그대로 열심히 하면 소설가가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자기는 좀 더 그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하면서요. 흠. 그렇군요. 소설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알았더마. 스물일곱의 아가씨가 유명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내가 여태 몸담았던 건축, 특히 시공 분야는 절대 이렇게 될 수 없습니다.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기술자가 됩니다. 특성이 전혀 다른 두 직업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소설가라는 직업이 꽤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기술이 무지 발달해서 동물과 소통이 가능하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보관할 수 있다면, 외계 행성에서 외계인과 함께 산다면, 인간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물질이 나온다면 하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흥미로왔습니다. 공학도라서 그런가? 하고 물어보려다 말았습니다. 암만 공학을 전공했다지만 이런 상상력을 글로 옮겨 내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올해 김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12만권이나 팔렸다네요. 대단합니다. 이런 감성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먹히는 구나 싶습니다. 북콘서트의 제목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읽을 수 없다면' 이라고 정했네요. 센스가 있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라는 문장을 완성해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의 속도로 가자". 네. 그렇지요. 우리의 속도로 책을 읽고, 우리의 속도로 인생을 살면 됩니다.
콘서트를 다 마치고 사회자가 작가의 아버지가 오셨다고 소개합니다. 청중 한 분이 일어섭니다. 마지막에 오신 남자분입니다. 음악을 하신답니다. 딸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참 진솔했습니다. 작가가 아버지를 닮았나 봅니다. 그리고..... 네, 그렇습니다. 남자분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던 이는 아버지였습니다. 하하, 아주 반전입니다. 결국 남자 청중은 저 하나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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