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단 사건, 그 기막힌 사연 :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민생단 사건
간도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중국 공산당에게 살해된 사건. 일제의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수립되자 한·중 민족을 분열시키고 항일유격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일제는 민생단을 조직했다. 민생단의 스파이들이 항일세력 내에서 '간도 자치'를 내세우며 분열공작을 획책하자 항일유격대세력들은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반민생단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와 항일유격대의 지도직을 차지한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민족배타주의에 빠져 한국인 항일투사의 대부분을 민생단으로 간주해버렸다. 그 결과 500여 명의 항일운동가들이 체포·살해되었으며, 많은 하부조직들이 마비상태에 빠졌다. 항일세력 내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준 반민생단투쟁은 동만특위 및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간부회의를 계기로 그 폐해가 시정되기 시작했다. (다음 백과 인용)
그니까 민생단이라는 친일 조선 자치대 비스무리한 것이 1932년에 잠시 생겼다가 사라졌는데, 그 후 몇몇이 살아남아 조선 항일 유격대와 중국 공산당에게 피해를 줬다는 거다. 그래서 중국과 조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조선인들을 모조리 죽였다는 얘기다. 책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1920년대에 독립운동사의 최대 비극이 자유시참변이라면 30년대는 민생단 사건이다, 중국 문화 혁명의 전초적 성격을 지닌다, 아리랑의 김산도 이 민생단 사건의 여파로 친일 첩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김일성도 민생단으로 몰렸던 적이 있는데 동북항일연군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경험이 주체사상의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 자료를 뒤척이다 알게 되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믿지 못하게 되는, 믿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총구를 겨누게 되는 지옥이었다. 어둠을 보지 못하고 또 믿지 못하는 두 개의 눈동자. 그 바닥 없는 아수라를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정치적 이유로 숙청이 시작되었지만, 일단 숙청이 가속화되자 사정은 달라졌다. 밥을 흘려도 민생단(어렵게 구한 식량을 허비하니까), 밥을 설구거나 태워도 민생단,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민생단(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은 전투력을 약화시키니까), 배탈이 나거나 두통을 호소해도 민생단, 사람들 앞에서 한숨을 쉬어도 민생단(혁명의 장래에 불안감을 조장하니까), 설사를 해도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고 말해도 민생단(민족주의와 향수를 조장하니까), 일이 어렵다고 불평해도 민생단,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민생단(정체를 감추려고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니까), 일제의 감옥에서 처형되지 않고 살아돌아와도 민생단, 오발을 해도 민생단, 가족 중에 민생단 혐의자가 나와도 민생단, 민생단 혐의자와 사랑에 빠져도 민생단,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민생단으로 몰리는 등 무고한 사람들을 일제의 간첩으로 모는 꼬투리는 끝이 없었다. (한홍구 교수의 글 중에서)
아, 그대 어두운 자들이여.
그대 밤과 같은 자들이여. 밤이 왔다.
이제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모든 노래가 깨어난다.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 니체 (p.99)
1.
칠흙같이 어두운 소설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이번에 읽으니 그렇지 않다. 시대와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했다. 혼돈과 어둠이 배경이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명료하게 보였다.
2.
한홍구 교수는 민생단 사건을 주제로 논문까지 썼다고 하면서, 소설로 접하는 것이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한교수의 글을 읽었지만, 교수님의 말이 정확했다.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도 그렇더마.
3.
암흑의 시대에 비극적인 스토리지만 기본적으로 사랑이야기다. 가슴 먹먹한 사랑이야기. 역사에 묻힌 슬프디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낼 줄이야. 이래서 작가란 인간들이 존경스럽다.
4.
저자가 촛불집회에 갔다가 공권력에 겁을 먹었을 때, 남총련의 깃발을 든 학생들이 나타났다. 그는 안심했다. 그의 시대에 남총련은 그런 존재였다. 그 학생들은 공권력에 대항하며 무섭게 싸웠다... 가 아니라 공권력 앞에서 춤을 추었다. 공권력은 그 학생들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저자는 그 모습에 분노했다. 저렇게 새로운 아이들을 그토록 낡은 방식으로 대접한 것에 대해. 이 이야기가 작가의 말에 나온다. 김연수란 그런 사람이다. 긴 소설보다 이 짧은 후기에 나는 팬이 되었다.
5.
니체의 시를 소개했다. 이 소설 단락이 바뀔 때마다 김연수는 루쉰, 니체, 단테, 하이네, 보들레르의 짧은 시를 적었다. 그 시들은 이 소설에 나오는 비극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6.
전쟁으로 다리 병신이 된 여옥이 해연을 만나러 오는 장면이 있다. 별 대사는 아닌데, 눈 앞이 흐려졌다. 이런 표현은 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어쩌자고 이 먼 곳을 왔니?
내사 얼굴이 전만 못합지?
무슨 소리를 하니? 안색이 안 좋구나. 토벌대가 사방에 깔렸는데, 도대체 어떻게 온 거냐?
토벌대가 어디 온 산을 다 막았답데? 가로막는다면 산이라도 다 마사버릴 마음입지.
지금이 어떤 시절인지 모르느냐?
내사 모릅지. 지금 어떤 시절인지 내사 모릅지. 내사 아는 것이라곤 외발로라도 반나절이면 어랑촌에 갈 수 있다는 것뿐이겠스꼬마. 시끄럽습둥. 내사 얼굴이 전만 못합메?
아니, 예쁘다. 몸은 괜찮니?
아무 일 없스꼬마. 예쁘다문서 어찌 눈으로 보면서 안아주지 않고 눈물만 흘림둥?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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