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이걸 대하소설로 만들어줘요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이 책에 대한 장강명 작가의 인터뷰 요약 (채널 예스 인터뷰 기사에서 발췌)
Q. 제목이 특이하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
A. 보통은 제목만 봐서는 내용을 모르게 하자는 마음으로 짓는다. 근데 이 제목으로 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다. 안현수의 귀화 사건. 빅토르 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이었다. 아, 국가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많구나, 그러면 그 이야기를 쓰자, 제목도 <한국이 싫어서>로 하자, 고 마음 먹었다.
Q. 주인공을 20대 여성으로 설정한 배경은?
A. 한국 사회가 젊은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여성들이 외국 생활을 동경하는 이유가 단지 '외국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이들을 공정하게 대하지 않아서라고 본다. 그래서 20대 여성의 독백으로 소설을 썼다. 유학생들을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적응 잘한다. 남자는 한국에서 누리던 기득권이 사라진 것에 대해 당황해서 그렇다.
Q. 니는 40대 남잔데, 20대 여성의 목소리를 내려고 어떤 노력을 했나?
A. 아내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계속 물어봤다. 젊은 여성이 생각하는 방식을. 출판사 편집자도 젊은 여성이었는데, 20대 여성의 말투 같은 거에 대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인터넷 사이트와 여초 게시판도 많이 들여다 봤다.
Q. 계나에게 국가란? 그리고 니한테 국가는?
A. '가까이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곳이 한국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계나에게 국가는 딱 이렇다. 계나는 자원 봉사를 하고 싶어 했는데, 계나에게 한국은 그런 공동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 한국은 '복원시켜야 할 공동체'이다.
Q. 이 소설은 결국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A. 큰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나도 행복보다는 의미를 추구한다. '5포세대 현상'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거다. 많은 걸 포기하고 삶의 목표가 생존으로 만들게 하는 사회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삶의 목표가 생존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저항의 시작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다.
Q.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기자 출신이다.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나?
A. 기자를 하다 너무 힘들어서. 이거 진짜다. 기자 생활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매일 꾸준히 일정량을 쓰는 자세가 몸에 배인 게 아주 좋다. 또 취재를 어렵지 않게 여기게 된 것도 기자 생활의 경험 덕분이다.
Q. 니 인생관이 궁금하다. 행복이란?
A.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허무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 그런데 의미라는 것은 다양한 맥락에서 발생하고, 그 여러 가지 의미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에 대해, 그리고 작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여럿 생겼다.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설회사 댕기다가 기자가 되고 소설가가 된 저자. 이런 게 진짜 가능하냐고. 우연히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딱 내가 묻고 싶은 것이었다. 그 부분을 옮겨봤다.
주인공 계나는 20대 후반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호주로 떠난다. 왜 떠났느냐? 한국이 싫어서. 한국에서 못 살겠어서. 계나는 이렇게 이유를 말한다.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떨헤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장이라도 떠? (p.11)
계나는 좀 특별한 애인가? 그렇지도 않다.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여성이다(사실, 20대 여성을 나는 볼 수 없다. 주위에 아얘 없다. 계나 같은 여성이 아니라 20대 여성 자체를ㅋㅋ). 한국을 떠난 계나는 호주에서 행복을 찾았나? 뭐, 그래 보인다. 한국에서보다 나아 보인다. 나름 삶에 의미도 찾고. 호주에서 영어 공부도 무지 열심히 하지 않았나. 남친도 만들고.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는데, 상상했던 내용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나도 그랬다. 아주 진지하게.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1년을 댕기고 군대에 갔다. 갔다오면 달라지겠지. 복학하고 한 학기 더 다녔다. 학교 생활이 전혀 바뀐 게 없었다. "엄니, 학교 그만 둘라요." "이런 미친 넘이. 그래, 그만 두고 뭐 할라꼬?" "키부츠 갈꺼요." "니 죽고 내 죽자." 뭐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한바탕 난리 부루스를 겪고 나서 결국 대학 마치고 니 맘대로 해라는 말에 꼬드김을 당해 졸업을 했고 당연하게 건설회사에 입사해서 남들 사는 것처럼 여태 살았더랬다. 요즘도 그때 그 선택을 했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상상하기도 한다.
계나의 삶에 대해 꽤 괜찮았다고 쉽게, 성의없이 말했지만, 산이가, 들이가, 강이가 "아빠, 나 호주가서 영주권 딸라요. 보내 주소." 라고 하면 "어이구 내 새끼, 기특하네. 잘 다녀와." 라고 말할 수 있겠나. 내 입에서 쌍욕이 안나오면 다행이다. 막상 내 문제가 되면 쉽지 않다. 나도 그 시절의 내 부모처럼 안될 자신이 없네. 근데 진심으로 가고자 한다면 (전혀 내키진 않지만) 그렇게 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소설은 계나가 지명과 한국에서 잠시 살다 다시 호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근데 그 뒤가 궁금하다.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았는지, 애인인 재인이랑 결혼도 하는지, 근사한 호주 남자를 다시 만나는지, 아니면 그냥 결혼하지 않고 커리어 우먼으로 살게 되는지, 언젠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그런 삶을 사는지, 뭐 그런 거. 그래서 2권, 3권이 나오고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야. 계나가 할머니가 되고 호주에서의 삶, 삶에 있어서 그런 결정이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죽기 전에 회고하는 거지.
소설이 짧아서 아쉬웠다. 대하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되면 더 좋겠는데.
'소설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시궁창이라구 : 이응준 <국가의 사생활> (0) | 2020.06.15 |
---|---|
우리가 빛의 속도로 읽을 수 없다면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0) | 2020.06.13 |
민생단 사건, 그 기막힌 사연 :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0) | 2020.04.23 |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0) | 2020.04.11 |
역사가 우릴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이민진 <파친코> (0) | 2020.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