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능력은 어떻게 키우냐고 물었더니 : 제러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
# 실험 1
두 개의 인조 어미 원숭이를 실험실에 놓았다. 첫 번째 것은 나무토막을 스폰지 고무로 덮어 보풀이 이는 부드러운 면으로 감싸 놓은 원숭이였다.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백열전구를 뒤에 놓았다. 두 번째 어미원숭이는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게 만드었다. 철망으로 만들어 방사열로 따뜻하게 만든 것이었다. 두 원숭이 모두 젖이 나왔다.
하지만 새끼 원숭이들은 천으로 만든 어미에게만 안기려 했다. 젖이 떨어졌을 때도 새끼 원숭이들은 천으로 만든 어미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철망으로 만든 어미에게 가면 젖이 나오는데도 그쪽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새끼 원숭이들은 배고파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도 철망 어미에게는 가지 않았다. (p.27)
# 실험 2.
<사이언스>에 열여섯 쌍의 커플을 대상으로 실험한 연구 내용이 실린 적이 있다. 그 실험에서 여자들에게는 MRI 장치를 연결했고 그들의 배우자나 애인은 가까이 있었다. 그런 다음 연구진들은 여자들과 파트너의 손등에 짧은 전기 충격을 주었다. 여자들은 파트너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자신들과 파트너 중 누가 다음에 충격을 받을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강도일지 계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전대상피질, 시상, 뇌섬엽 등을 포함하여 그 여자들의 대뇌변연계의 같은 통증 영역이 즉각 반응했고, 그것을 그들에게 충격을 직접 가했을 때나 그저 상상했을 때뿐 아니라 그들의 파트너에게 행했을 때도 똑같은 통증 영역이 자극받았다. 다른 사람의 느낌에 대한 공감적 반응을 얼마나 실감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준 획기적인 실험이었다. (p.105)
인터넷의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각종 SNS을 보며 남들이 어찌 살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살고 있다고 가상 공간에 올리고. 근데, 거의 모든 블로그엔 피드백을 할 수 있는데 적극적으로는 댓글을 달고, 그게 귀찮으면 공감(보통은 하트 표시로 되어 있다)을 누른다. 동영상은 좋아요를 누르고. (내 글에는 공감도 0이고 댓글도 0이다ㅠㅠ. 독자님들, 잠깐이면 됩니다.^^)
미국 대통령의 여론 조사에는 최근 이런 항목이 실렸다. "어떤 후보자가 당신에게 더 공감할 것 같습니까?" 대통령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대통령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거울 뉴런 세포라는 게 우리 머리 속에 있다고 한다. 최근에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게 뭐냐면 상대방의 행동을 보면서 관찰자인 내가 행동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다. 엄마의 행동을 나도 모르게 따라한다거나, 테레비 막장 연속극을 보면서 막 욕하고 따라 웃고 우는 나의 행동이 바로 이 신경의 작용이라는 거다. (막장 갑질의 대가들은 이 신경이 아얘 없는 넘들이다. 한마디로 있어야 할 게 없는 장애인이라는 거지.)
공감의 시대다. 공감의 시대라는 거에 공감한다. 공감하는 능력은 우리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에게도 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다른 동물을 구하려는 코끼리를 비롯한 많은 예시가 책에 나온다. 그니까 공감하는 능력은 본래 장착되어 있는 거다. 요즘 생긴 게 아니다. 예전부터 있던 능력인데 요즘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공감이 필요한 시대라서 그렇겠지. 맞다. 타인의 공감이 필요한 시대다. 아내의 공감도 필요하도. 그것도 절실하게.
제러미 리프킨 아자씨가 저렇게 생겼구나. 석학들은 대머리가 많던데 이 아자씨도 예외는 아니네ㅋㅋ. 그나저나 이 책, 보기만 해도 질린다. 읽으려고 하는 의지를 대번에 압도하는 두께다. 라면 받침으로도 불편해 보일 정도다. 아이고, 어쩌자고 이렇게 두껍게 쓰셨나요? 핵심 요약은 없나요?
그래서 꾸역꾸역 읽었다. 지금이 공감의 시대라는 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싶어서. 그랬더니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철학자들이 막 나오고, 서양의 역사가 계속 나온다. 아니? 공감의 시대라는 책인데 공감 이야기는 별로 안하고 딴 얘기만 해요? 무협 만화인데 칼싸움은 안하고 농사 짓는 장면만 몇 권이 이어지는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배가본드>처럼.
리프킨은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이것의 기원, 형성 과정,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정치, 경제, 종교, 철학을 넘나들며 휘젓는다. 그리고 급기야 "인류는 계속 존속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그 해답으로 공감을 꼽았다. 내용도 두께 못지 않게 어마어마하다. 공감을 이렇게까지 확장하다니. 인류가 계속 살아남기 위해 공감이 필요하다니.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공감'의 능력은 어떻게 키우는데 하고 물었더니 이 아자씨는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 줄 수 있을까? 공감은 가르치거나 훈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공감해 줌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이가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이가 어떤 관계를 경험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p.97)
이렇게 명쾌할수가. 공감은 가르치거나 훈계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공감해 줌으로써 생긴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거꾸로 해석하면 내가 공감 능력이 커지려면 나도 공감을 받으면 된다. 나에게 공감해 줄 이를 만들면 내 공감 능력도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내가 공감해주면 그 사람의 공감 능력도 자라고. 공감이야말로 문어발 확장이 가능하다.
저 짧은 문장으로 8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은 보람을 다 얻었다. 공감의 핵심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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