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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내 앞에 드러난 현상 세계는 내 마음이 지어낸 것 :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by Keaton Kim 2020. 7. 29.

 

 

 

내 앞에 드러난 현상 세계는 내 마음이 지어낸 것 :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우주의 개수는 무한개다.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이다. 우주의 나이는 137억 살이고. 100년 전에 허블이라는 냥반이 별을 관측하다 별이 멀어진다는 걸 발견했다. 별은 움직이니 그럴수도 있지 뭐, 하고 생각했는데 관측한 모든 별이 다 멀어졌다. 심지어 별과 별 사이도 멀어졌다. 아, 우주는 팽창하구나. 그래서 팽창하는 속도를 나타내는 허블 상수라는 걸 만들었다. 우주가 팽창하는 거라면 과거로 갈수록 우주의 크기는 작아질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계산해보니 137억 년 전에는 우주가 모래 알갱이만 했다는 얘기다. 그 모래 알갱이가 폭발해서 우주가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과학자들이 밝혀낸 정설이다.

 

 

 

그럼 그 전에는 뭐가 있었어? 우주는 딱 하나 뿐이야? 설마 그럴리가. 빅뱅 이전에도 뭔가가 있었을테고 우주는 무한히 많겠지. 인플레이션이라 불리는 폭발하면서 팽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 다른 게 그 증거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비유하자면 이런 거겠지. 연지공원의 못에서 노는 붕어는 그 못이 곧 우주다. 근데 김해에 그만한 못이 여러 개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더 많으며 세계로 넓히면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붕어의 우주는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사람으로 보자면 이전에는 하나의 나라가 곧 우주였는데, 알고보니 지구라는 큰 행성이 있었고, 그 지구는 태양의 행성 중의 하나고, 우리 은하에는 그 태양이 4천억 개쯤 있고, 우주에는 우리은하 같은 녀석들이 또 4천억 개쯤 있다는 거, 뭐 그런 얘기다. 이러한데 우주가 하나라고 우기는 건 곤란하다. 오히려 무지 많은 게 더 합리적이다.

 

 

 

우주는 그렇다치고, 아주 작은 물체를 다루는 양자역학은 어떤가. 물체는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린가. 울 막내 강이가 사실 여러 장소에 있는데 내가 내 옆에 있는 강이를 보니까 여기 있는 거라고? 모래 알갱이가 폭발해서 우주가 되었다는 소리보다 더 황당하다. 여태 내가 배운 지식과 나의 이성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소리다. 근데 이걸 과학이 증명했다.   

 

 

 

이걸 조합해보면 우주는 여러 개이고 나도 여러 개다. 그렇다면 이런 얘기도 성립한다. '또 다른 내가 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다.' 무슨 허황된 소리냐고? 그럼 이건 어떤가,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평행우주는 복권에 당첨된 나, 첫사랑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나, 아직도 여전히 노가다를 하고 있는 나, 어제 참았던 삼겹살을 먹고 있는 내가 있다. 내가 망설였던 판단에서 다른 결정을 한 내가 살고 있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이 세계는 이전부터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나는 이 세계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강에 던지는 작은 돌 정도다. 내가 죽어도 세계는 여전히 변함없이 이런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게 우리가 배웠던 거다. 그런데 이게 아닐 수도 있다. 내가 태어나면서 우주도 함께 태어났고, 내가 죽으면 이 세계는 소멸한다. 나와 이 세계는 하나다. 아주 오래 전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단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신비한 사상은 일원론이다. 자아와 세계라는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존재가 실제로는 하나이며, 근원에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이다. 이 책의 목표는 뚜렷하다. 그것은 인류 사상사의 밑바탕을 이루는 거대 사상을 당신의 마음속에서 깊게 체험하는 것이다. (p.8)

 

 

 

현대인은 자신이 과거의 사람들보다 진보했다고 믿는다. 고대인은 어쩐지 교육받지 못했고 미개하며 원시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타당할지 모른다. 인류는 기나긴 역사의 시간 동안 지식을 축적했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삶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왔으니까. 우리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청결한 화장실을 갖고 있으며,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고대인보다 지혜로운가? 그들보다 인생을 더 가치 있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고전이 남아 있어서다. 우리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 안에서 오늘 나의 고뇌와 욕망을 고스란히 비춰보게 되어서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p.158)

 

 

 

이 모든 것이 브라흐만이며

아트만이 바로 브라흐만이다.

- <만두끼야 우파니샤드>

 

이것이 고대 인도인이 찾아낸 궁극의 지혜다. 하지만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현대인에게는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결론이다. 우주나 세계는 나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고, 나 혹은 자아라는 것은 내 몸 안쪽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선명하게 다른 것을 어떻게 무턱대고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지만 낯설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해서 범아일여를 쉽게 지나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개념이 시대와 장소를 망라해서 수많은 지혜로운 사람에 의해 말해지고 새롭게 쓰여왔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이들은 범아일여의 지혜가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는 길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범아일여를 단지 언어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체험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우리가 그것을 체험하게 되면 궁극의 지혜에 닿을 것임을 위대한 스승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p.201)

 

 

 

오늘날 우리에게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당신은 인생에 대해 어떤 전망과 계획을 갖고 있는가? 좋은 대학에 가고, 높은 연봉의 회사에 취업하고,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자동차를 갖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길 꿈꾸고 있는가? 당신은 누구인가? 도대체 어떤 존재로 이 세계에 눈떴기에 그런 꿈을 좇고 있는가? 이 핑계 저핑계를 대며 단 한 번도 자신을 찾기 위한 시간을 가져본 적 없는 우리가 고대의 인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다. (p.213)

 

 

 

초기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 <화엄경>은 이러한 결론을 매우 명료하게 표현한다. 바로 '일체유심조'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단순히 '네가 마음먹은 대로 될 것'이라는 자기계발적인 메세지로 해석되기에는 너무도 묵직한 개념이다. 일체유심조는 존재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꿰뚫는다. 우리가 언젠가 이 말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때, 아마도 우리는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내 앞에 드러난 현상 세계가 내 마음이 지어낸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휘둘리지 않고 욕망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로써 자유로워질 테니 말이다. (p.381)

 

 

 

 

 

 

내 앞에 드러난 현상 세계는 내 마음이 지어낸 것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 이 우주가 나와 하나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내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예전부터 한번쯤 들었던 말이다. 나는 종교가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지어낸 말들로 여겼다. 그런데 백수가 되고 나서 나와 내 주변의 상황이 확 바뀌면서 나의 생각도 달라졌다. 요즘은 이 말들이 오히려 더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이 책에서 고대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게 진짜 진리라고 한다. 아, 뭔가 대단할 걸 잘못 건드린 듯 하다. 나의 세계관이 확 넘어간다. 

 

 

 

채사장은 현인들의 지혜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그래서 어떡해야 하는데? 에 대한 답도 들려준다. 세상의 소리를 의심하고 마음을 뺏기지 말며, TV를 끄고 SNS를 닫아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깊은 정적 속에서 나와 대화해야 한다고. 이게 즐거움이 되면 이제 세상에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천천히 나아가라고 조언한다. 채사장, 글을 참 잘 쓴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내용인데 아주 알기 쉽게 풀어냈다.

 

 

 

반야심경에서 독자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다른 것에 기대어 존재한다고 했다. 이런 상태를 '공空'이라고 했다. 나와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나도 이제 조금 안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냐에 따라 내가 보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내가 조금 활기차고 밝으면 세상은 아주 푸르게 빛난다. 내가 어둡고 좋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히면 세상은 그에 맞춰 칙칙한 회색빛으로 변한다.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니고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조금만 더 공부하면 나와 세상이 하나며 이 우주는 나와 함께 태어나고 살다가 소멸한다는 진리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나의 이런 생각들을 막내에게 이야기했다. 우주는 여러 개이며 다른 우주에는 다른 강이가 살며, 지금 니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은 너만의 세상이고 니가 죽으면 너의 세상도 없어진다고. 중학교 2학년인 막내는 '요즘 아빠 돈 벌러 안가고 집에서 놀더만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녜요?' 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음, 그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