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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 : 프레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by Keaton Kim 2020. 2. 17.

 

 

 

살아남은 자의 슬픔 : 프레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이 있는 사람 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을 찬찬히 검토하고, 자신의 기억을 모두 되살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 그 기억들 중 무엇도 가면을 쓰고 있거나 위장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스스로를 점검해본다.

 

 

 

그런데 아니다. 명백한 범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누구의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구타한 적도 없으며(그럴 힘이라도 있었겠는가?), 어떤 임무를 받아들인 적도 없고(맡겨지지도 않았지만....), 그 누구의 빵도 훔친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각자가 자기 형제의 카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자기 옆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그 사람 대신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상상, 아닌 의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상이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좀벌레처럼 우리 머리속 깊이 자리 잡고 들어앉아 갉아먹으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p.95)

 

 

 

1987년 4월, 한 노인이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검시관은 자살로 판정합니다. 찾는 이도 없이 싸늘한 주검으로 생을 마감한 이 노인은 프레모 레비입니다. 젊은 시절 파시즘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갔습니다. 함께 수용소에 간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수용소를 나온 후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사실을 차분한 목소리로 증언합니다. 여러 책을 내고 강연을 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떨쳐버릴수가 없습니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간지 40여 년이 지나 결국 자살로 자신의 생을 끝냅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그가 죽기 한 해 전에 나왔습니다. 서경식 교수는 이 책이 그의 유서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잘 모릅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어마어마한 경험도 활자로 느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책에서도 그러했고 특히 이 책은 수용소 이후의 삶이 수용소에서의 삶의 연장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생각했지만, 오직 증언해야 한다는 목표로 살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이 나오자 미련없이 생을 마감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아,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란 이토록 무거운 걸까요.

 

 

 

지난 여름 독일을 여행하며 이 책을 읽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다시 뮌헨으로 가는 기차에서 주로 읽었다. 지루하지 않게 이동하는 방법으로는 역시 책읽기다. 유럽 여행에서 동선때문에 아우슈비츠에 갈까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지인(고등학교 역사 선생)이 독일에 있는 다하우 수용소에 가보라고 추천했다.

 

 

 

뮌헨의 다하우 수용소. 나치가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첫번째 수용소로 나중에 세워지는 수용소의 원형이 되었다. 아우슈비츠와 함께 나치 강제수용소의 상징이라고 한다. 시내에서 기차로 30분을 가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10여 분을 달려 도착했다. 동네 이름이 다하우다. 

 

 

 

그 유명한 정문의 글씨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다. 여긴 오직 노동만이 있을 뿐이다. 너희들의 노동으로 수용소는 더욱 번창하리라. 쓰벌. 원래는 노동자들의 가치를 대변하는 좋은 말이었는데. 쓰벌. 그 시절의 진짜 문은 안의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이상 기온으로 더위가 절정에 달했다. 박물관에서 시작해서 기념관까지 한바퀴 쭉 둘러보는데 약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태양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내려쬐여 오히려 을씨년스러웠다고 할까. 걷다가 쓰러질 지경이었다. 수감자 체험 실사판인가.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은 그런 기분을 느껴보라고 하늘이 말하는 것 같다. 수용소의 전경이다.

 

 

 

당시의 사진이다. 가로수길을 사이로 수감동이 양쪽으로 늘어서있다. 30개국 20만 명 이상의 죄수들이 수감되었고, 2만5천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의사와 과학자들은 수감자을 말라리아에 일부러 감염시켜 여러가지 주사를 놓은 등 생체 실험도 했다고 한다.

 

 

 

그 시절 수감자들이 살던 건물 자리엔 줄기단만 남아 있어, 옛 사진을 보지 않으면 잘 상상이 안된다. 휑한 자리를 보니 마음이 쓰리다. 그 오랜 세월을 지켜온 나무들만이 꿋꿋하다.

 

 

 

뼈와 피부만 남은 사람들. 박물관 내에서는 그 시절의 사진을 전시하고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다큐멘터리는 아주 적나라했다. 저걸 왜 찍어서 남겨놨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 이 새퀴들, 나쁜 짓 진짜 많이 했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책으로 읽는 거와는 전혀 다르다. 몸이 떨렸다.

 

 

 

그 시절 수용소의 열악함이야 이루 말할 수 있겠나. 덩그러이 놓여 있는 닭장같은 침대로 그 시절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했다. 오히려 무슨 설치 예술품처럼 보였다.

 

 

 

가스실과 소각장. 어? 새로 지은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당시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외형이 똑같았다. 굴뚝이 유난스레 돋보였다.

 

 

 

여기는 대기실이다. 무슨 대기실이냐고? 바로 저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대기하는 곳이다. BRAUSEBED 샤워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샤워하러 간다고 했지 아마. 저렇게 적어놔도 사람들은 아마 다 알았을 것이다. 여기가 가스실에 들어가기 바로 전이라는 걸. 그래서 사실 이 공간이 더 무섭다.

 

 

 

수용소의 하이라이트인 가스실이다. 들어와서 혼자 있었다. 아무도 없는 가스실에 혼자 우두커니. 시간이 지나자 열이 나고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좀 더 있으려고 했지만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얼른 이 수용소를 벗어나고 싶어졌다. 역시 귀신이 힘인가. 

 

 

 

천정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 어두운 내부 공간이 이 빛으로 인해 환해진다. 추모비의 내부다. 나치 시절 그들이 저질렀던 나쁜 짓은 결코 용서가 될 그 무엇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그 시절의 잘못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사죄했다. 옆 나라 일본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숙소로 돌아와 책을 들었다. 방금 다녀온 소용소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으니 미처 알아채지 못한 문장들이 살아나 움직인다. 독후감을 얼른 쓰고 싶다. 소용소에서의 그 감정들이 사그러들기 전에.' 여행의 메모장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만, 바로 이 책의 독후감을 쓰지는 못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이 책에 대해 씁니다. 그 때 살아 움직인 그 문장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글은 제때 써야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 유명한 시는 독일 시인이자 극작가 브레히트가 지었습니다. 히틀러가 책을 불태우고 지식인을 탄압하자 고향을 떠나 유럽의 여러나라와 미국으로 15년 동안이나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나치에 쫓겨 스페인 국경에서 결국 자살한 발터 벤야민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문턱을 여러번 넘었습니다. 친구들은 거의 죽었구요. 자신은 운이 좋아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했죠.

 

 

 

레비의 마지막 책을 읽으며 아주 오래 전에 저자가 겪었던 사건과 그의 증언을 기억하려 애씁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우리는 가라 앉은 자들을 애도하지만 정작 살아남은 아이들의 슬픔은 어떠할까요? 그 멍에는 레비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며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좀벌레처럼 그들의 정신을 갉아먹을 겁니다. 그것이 어떤 건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작가가 삶을 유예하면서까지 증언하려고 했던 건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래서일겁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월호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남은 아이들의 상처와 그들이 내는 소리를 기억할겁니다. "이제 세월호 얘기는 좀 지겹지 않아?" 라고 말하는 이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겠지요. 기억에서 사라지면 또 반복될겁니다. 역사가 그랬습니다. 레비의 당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