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최전선에 선 파르티잔의 삶 : 황석영 <수인>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2권 p449 에필로그 중에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후~~ 하는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좀 두툼하긴 하지만 이 두 권짜리 책을 읽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줄 몰랐습니다. 휙휙 넘어갈 책이 아니었습니다. 516과 419를 거쳐 박정희의 시대를 넘고 광주 항쟁을 지나 평양 방문과 가장 최근의 촛불 혁명까지 굽이굽이 펼쳐 내려간, 막막하고 슬프고 두근거리기까지 한 우리 현대사의 장면장면이 이제 막 끝이 났습니다. 책을 덮자마자 담배 한 대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북한에 다녀온 빨갱이 왕구라 소설가
선생이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이 북한에 갈 당시에 평양을 방문한 빨갱이 중에 왕빨갱이 소설가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 연대하려고 했고, 박정희의 유신 체제에 저항했으며, 광주 항쟁 당시 누구보다 앞서서 정부의 만행을 알리려고 했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최전선에 서서 싸웠던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시궁창의 현실과 마주보고 그것을 극복하려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구라 잘치는 좌빨 소설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최전선에 서서 절망과 희망을 온몸으로 부딪힌 지식인이었습니다.
황석영 선생의 별칭은 황구라입니다. '구라'의 어원이 정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말 잘하는 자, 또는 장광설을 펴는 자라는 뜻으로 흘러간 옛날 식의 재담으로 좌중을 웃기는 재간을 보고 별명을 지어주었다고 책에서 밝혔습니다. 통일문제연구소장 백기완 선생, '방배추'라 불리는 방동규, 그리고 황석영을 가리켜 우리나라 3대 구라라 부른다는 군요. 이어령 교수와 유홍준 선생, 도올 김용옥 교수도 구라라고 하면 안 밀리시는 분들이라 이들을 포함해서 6대 구라라 불러야 되지 않겠냐고 하니 듣고 있던 '방배추'가 "걔들은 교육방송용이야!"라는 일갈에 그 세 분은 방송 3대 구라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합니다. ㅋㅋㅋ 앞에서 열거하신 분들은 아무래도 흘러간 강물이고, 요즘에 한창 썰을 많이 푸는 유시민, 손석희, 김제동 정도가 신흥 구라 세력을 만들고 있습니..... 음, 손석희는 아닌가..... 혼자 생각이었습니다만.....
황구라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입니다. 가장 먼저 손에 들었던 책이 <무기의 그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진짜 진실을 말해 주었죠. 그 뒤로 <머나먼 쏭바강>, <하얀 전쟁> 같은 베트남 전쟁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하소설 <장길산>이 주었던 쾌감은 아직도 선합니다. 그 뒤로도 <오래된 정원> <바리데기> 등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의 소설에는 생생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기 보다는 그가 겪은 수많은 일탈과 방황과 자유의 몸부림을 바탕으로 그의 글이 완성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우리나라 현대 문학사 혹은 사회사라 해도 좋을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신이 책에서 투옥의 시기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언급하며 직접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윤한봉, 김근태, 나병식, 김남주, 문익환, 최승칠, 김용태, 여운, 김영중, 이문구, 이주희, 윤이상, 이수자, 최영숙, 어수갑 등이 바로 그 분들입니다. 그 외에도 함석헌, 백기완, 손학규, 김지하, 이문열, 박석무, 고은, 백낙청, 한승원, 박원순, 신경림 같은 현대사의 기라성 같은 분들도 조연으로 등장하십니다. (좌빨 황석영 우빨 이문열이라고 알아왔는데, 그것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책에 이문열과 만나 나누는 대화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고 나니 이문열에 대한 거부감이 좀 사라지는 것 같다. <사람의 아들>을 읽고 난 뒤의 그 먹먹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랬던 이문열인데..... 어쩌면 그도 우리의 아픈 시대가 만든 뒤틀린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 몇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문익환 목사가 정자 위에서 혼자 대동강을 내려다보고 쉬고 있었다. 그는 방금 시 한 편을 썼노라며 수첩에 적힌 싯귀를 큰 소리로 낭송했다. 우리 모두 어쩔 수 없는 낙천주의자들이었지만 이제 돌아가면 구속될 험준한 길을 앞에 두고 어쩌면 저렇게 무사태평인지 나는 문목사가 낭송하는 시를 들으며 그의 순수한 열정에 감복했다. (1권 p.202 평양 방문 시 문익환 목사와 만나는 장면)
영화 동주에 나오는 윤동주 송몽규와 한동네에서 자랐고 돌베개 장준하의 친구인 그 문익환(1918~1994) 선생이 맞다. 문성근의 아부지. 80년대 재야 운동권의 상징이며 1989년에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담을 가졌다. 민간인이 김일성을 만나 통일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엄청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전대협의 임수경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게 된다. 그가 돌아가신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이곳 저곳에서 선생을 만난다. 영화 1987의 엔딩크레딧에서 최근에 만났다.
사진 출처 : http://m.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094
윤한봉은 짧은 머리에 작업복 차림으로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일용노동자 같은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서양인들처럼 끌어안지는 않았으나 두 손을 꼭 잡고 흔들었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물기가 가득 고였다. 나도 돌아서서 눈시울을 닦았다. 윤은 나보다 다섯 살 아래였지만 웅숭깊은 심성이며 현실에 대한 통찰력과 성실성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려워하던 친구였다. (1권 p.58 방북 이후 망명 시절 미국에서 재회하는 장면)
윤한봉(1947~2007)은 광주항쟁의 주모자이자 마지막 수배자다. 사회활동가로 민청학련 당시 전라도 책임자로 잡혀 형을 살고 광주항쟁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다. 1993년 수배가 해제되자 많은 민주 인사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국하였으나 정작 그는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으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았다. 이 책에 자주 나오신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생각은 다를 수 있어요. 좀 앞서가는 점도 있지만 독재를 타도하자는 점은 분명합니다. 저는 시방 무섭고 미치도록 떨려요. 하지만 이제야 살아있는 것만 같소." (2권 p.361)
뜨거운 아랫도리 억센 주먹의 이 팔팔한 나이에
형제여,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슬 묶여 쇠사슬 벽 속에 같혀
노래하고 목청껏
힘껏 일하고
내달려서 전진하고 기다려 역습하고
피투성이로 싸워야 할 이 창창한 나이에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승리하고 패배하면서
빵과 자유와 피의 맛을 보아야 할
이 나이, 이 팔팔한 나이, 이 창창한 아니
서른 다섯의 결정적인 순간에
긴 침묵으로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형제여
김남주 <형제여>, [진혼가] (청사, 1984)
저 시를 읽으니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가 떠올랐다. 살아 있을 때 "나는 시인라기보다, 무슨 글쟁이라기보다 전사여, 전사!"라고 즐겨 말하던 시인 김남주(1946~1994). 안치환의 노래로 '자유'를 비롯한 그의 여러 시를 들었으나 시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건 이 책이 처음이었다. 해남에 가면 그의 생가가 있는데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아직이다.
사진 출처 : http://1boon.daum.net/ppss/58baa80eed94d200019584be
한국 현대사의 숱한 굴곡과 파란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소설가 황석영
고등학생 때 419가 일어나고 거기서 친구가 경찰의 총에 죽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후 가출과 방랑을 일삼았으며, 졸업 후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유치장에 들어갔으며, 그 때 만난 노가다를 따라 일용노동자의 생활을 맛보기도 했고, 속세를 떠나 행자 노릇을 하기도 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하며 자신을 찾으러 온 어머님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해병대에 지원했고 베트남 파병에 차출되어 죽을 고비도 넘깁니다. 제대 후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은 피폐해져 자실을 기도했으며 그 후 전업 작가의 길을 걷습니다. 유신과 광주, 방북과 망명을 거쳐 옥살이의 여정이 마치 어제일 같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쓰셨단 말인가. 아님 살짝 구라가 들어갔나? 나는 작년의 일도 잘 기억 못하는데..... 이래저래 대단하시다.)
그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북한에 간 것입니다. 북한이라니요, 거기가 나 다녀올께 라고 갔다올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윤이상 선생은 오로지 북한에 있는 벽화를 보려는 일념으로 다녀왔고, 문익환 목사도 김일성과 통일의 방향에 대화를 나누었으며 임수경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가 판문점으로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지금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그렇게 뒷동산 가듯 다녀왔습니다.
미지의 것 때문에 금기의 억압이 있다면 작가는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그것을 위반하고라도 확인해야만 한다. 국경, 장벽, 철조망 너머로 날아오고 날아가는 철새들을 본 적이 있다면 생명의 본성과 사람이 정해놓은 잡다한 규정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게 될 것이다. (1권 p.275)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작가의 사명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선생이 살았던 과거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이라고 한다면, 그건 분명 '금기의 억압'에서 벗어나 그것을 깨부수려고 했던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굴곡과 파란의 시대 맨 앞에서 칼날같은 바람에 비켜서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힌 사람들 말이지요. 시대의 지식인이 어떠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사진 출처 : http://webzine.artgy.or.kr/?p=7229
책은 작가 자신의 지나온 삶을 보여주는 자서전입니다. 자신이 겪어온 시간들을 반추하고 다시 엮어서 쓴 글입니다. 에세이지만 대하소설 같았습니다. 일탈과 방황으로 점철된 청춘과 선생이 겪었던 참혹했던 전쟁과, 강물과 같은 피가 흘러내린 시대의 아픔과, 스스로 들어간 감옥에서의 시간과, 망명자의 외롭고 아픈 시절과, 그리고 선생이 고백하는 가정사의 회한까지도 모두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한 개인의 자서전이지만 아프고도 생생한 우리 현대사의 보고서이자 민주주의의 기록입니다.
선생은 우리 아부지와 나이가 같습니다. 저보다 딱 한 세대 위입니다. 선생의 시대는 이제 그 모든 사연을 담고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유신 반대, 광주 항쟁, 그리고 6월 민주 항쟁이 우리 윗 세대의 강물이라면,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 촛불 혁명, 박근혜 탄핵은 우리 세대의 강물입니다. 선생이 그랬듯이 우리도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우리의 후대가 살도록 만들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이 책을 권하겠습니다. 너거 할배 세대는 이랬단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의 토대를 이렇게 만들었단다....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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