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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27

누구나 그저 조금씩 외로운 것뿐이야 : 윤대녕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누구나 그저 조금씩 외로운 것뿐이야 : 윤대녕 누구나 그저 조금씩 외로운 것뿐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때로 불안할 때가 있는 것처럼. 이젠 스스로 불안을 잠재우는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그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야. # 윤대녕 내가 읽은 윤대녕의 첫 소설은 다. 제목이 거시기 해서 기억한다. 꽤 오래 전이라 내용은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은근했다. 좌충우돌하는 서사는 없지만 몽환적이고 담담하면서 쓸쓸하고 아련한 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 , 등을 비롯한 여러 소설을 읽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은 도시 난민의 사랑을 다룬 이다. 며칠 전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 를 발견했는데,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바로 집어들었다. 윤대녕 소설이니. # 존재의 시원 일상으로.. 2018. 11. 4.
너는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될 놈이야 : 정유정 <종의 기원> 너는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될 놈이야 : 정유정 집중할 일이 생기면 오히려 호흡이나 맥박의 속도가 뚝 떨어졌다. 얌전하거나 유순하거나 참을성이 많아서가 아니라, 흥분의 역치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는 유진의 심장이 뒤려면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혜원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겁이 났다. (p.259) '피 냄새가 잠을 깨웠다.'로 소설은 시작한다. 잠이 깬 유진은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을 하고, 침대, 이불, 배게가 온통 피로 물들여 있고 자신의 옷에도 선지처럼 응고된 핏물이 붙어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란다. 피 냄새는 발작 증세의 신호가 아니라 진짜 피였다. 도대체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핏줄기가 타고 흐른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보니 주방 .. 2018. 7. 15.
혁명가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의 찬란하고도 곡진한 일대기 : 조선희 <세 여자> 혁명가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의 찬란하고도 곡진한 일대기 : 조선희 우리 3인은 본래 동지로서 친구로서 단발하기로 작정하기는 이미 오랜 일이었습니다. 서로 깍기로 언약하고에 곧 머리를 풀고 긴 것만 추려서 집었습니다. 자르고 나니 머리숱이 퍽 많아 보였습니다. 3인 중에서 제일 먼저 자른 사람은 나였습니다. 머리를 잘리우는 그 자신은 쾌활한 용기를 내어가지고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손에 가위를 들고 남의 머리를 자르는 그때는 이제까지 잠재하였던 인습의 편영片影이 나타나며 몹시 참담하고 지혹至酷한 느낌을 아니 가질 수 없었습니다. 삽시간에 3인은 결발의 신여성으로부터 단발랑 송락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다 깎은 뒤에 서로서로 변형된 동무의 얼굴을 쳐다보며 비장하고도 쾌활미가 있는 듯 웃어버렸습니다. 웬일인지 서로.. 2018. 2. 25.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 김훈 <공터에서>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 김훈 소총 가늠구멍 속에서, 잇달린 산들이 출렁거렸다. 바람이 산봉우리를 훑어서 고지마다 눈이 회오리쳤다. 바람은 눈보라를 몰아서 동해로 나아갔다. 천지간에 눈 비린내가 자욱했다. 달이 뜨자 골짜기의 어둠이 더 짙어졌고 눈 덮인 봉우리에 푸른빛이 스몄다. 팽팽한 밤하늘에서 별들이 추위에 영글어갔다. 밝은 별 흐린 별이 뒤섞여 와글그렸는데, 귀 기울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 덮인 산맥은 인간과는 무관하게 출렁거렸으나 그 흐린 산맥이 인간을 향해 내뿜는 적개심을 초병들은 감지하고 있었다. (p.15) "마 상병, 팔 굵어졌네." 박상희의 입에서 흰 김이 새어 나왔다. 마차세는 박상희의 김을 들이마셨다. 김은 풋것의 냄새로 비렸다. 마차세는 밤 10시에 귀.. 2017.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