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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야기39

사랑만 하고 살아도 모자란 날들 :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사랑만 하고 살아도 모자란 날들 : 강창래 눈을 뜬다. 조용하다. 냉장고를 열어 매실물 한잔 마신다. 정신이 좀 든다. 방방마다 문을 열어본다. 큰넘은 반듯하게 잔다. 이불도 목까지 덥고서. 딸아이는 지 방 구석에 웅크리고 잔다. 분명 가운데서 잤을 텐데. 크고 예쁜 고양이다. 막내는 엄마와 엉켜서 자고 있다. 냉장고를 연다. 홈쇼핑에서 주문한 오징어가 있다. 오늘 아점은 오징어 볶음이다. 냉동된 오징어 두 마리를 흐르는 물에 녹이고 먹기 좋게 썬다. 껍질을 벗기면 더 부드럽다고 하나 귀찮다. 양념장을 만든다. 고추장, 고추가루, 땡초, 마늘, 설탕, 간장, 맛술, 참기름을 넣고 저어준다. 또 뭐 넣을 거 없나? 먹다 남은 와인과 매실액이 보인다. 마저 넣고 오징어를 투하해서 버무린다. 잠깐 재워둔다. .. 2020. 3. 22.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긍정을 바라지도 않는다 : 김훈 <연필로 쓰기>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긍정을 바라지도 않는다 : 김훈 늙어서 슬픈 일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못 견딜 일은 젊어서 저지른 온갖 못된 짓거리와 비루한 삶에 대한 기억들이다. 그 어리석은 짓, 해서는 안 될 짓, 함부로 써낸 글, 너무 빨리 움직인 혓바닥, 몽매한 자만심, 무의미한 싸움들, 지겨운 밥벌이, 계속되는 야근과 야만적 중노동..... 이런 기억이 물고 오는 슬픔은 뉘우침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한恨이나 자책일 뿐이다. 그 쓰라림은 때때로 비수를 지른다. 아아, 나는 어쩌자고 그랬던가. 그때는 왜 그 잘못을 몰랐던가. 이보다 더 슬픈 일은 그 악업과 몽매를 상쇄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미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절벽과 마주선다. 이런 회한과 절벽을 극복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 .. 2020. 3. 2.
글을 쓰지 않으면 그냥 방송 건달일 뿐이다 :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글을 쓰지 않으면 그냥 방송 건달일 뿐이다 : 허지웅 지인 : 허지웅 글 읽어 봤어? 나 : 아니. TV에 나오는 그 친구 별로던데. 쫌 이상해. 지인 : 아냐. 시간내서 함 읽어봐. 글은 완전 다른 모습이야. 나 : 그래? 그렇단 말이지. 몇 해 전에 함께 공부 모임을 하던 지인이 허지웅의 글을 추천했습니다. 당시 허지웅은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딱 봐도 뭔가 삐딱한 녀석이었습니다. 냉소적이고, 결벽증도 있는 것 같고. 보기에 별로였습니다. '젊은 녀석이 참 독특하네' 뭐, 그 정도.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영화 를 소개했습니다. 경기 전날 록키는 애인인 아드리안에 이런 말을 합니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어. 15회까지 버티.. 2020. 2. 17.
아주 근사한 공간에서 아주 근사한 산문을 읽다 : 제수연 <나는 아직 멀었다> 아주 근사한 공간에서 아주 근사한 산문을 읽다 : 제수연 동네에 라고 하는 도서관이 생겼다는 소식을 꽤 오래전에 듣고선 이름이 참 예쁘고 잘 지어서 가봐야지 생각했더랬는데 이제서야 문득 생각이 납니다. 위치를 찾아봅니다. 엉? 주촌초등학교? 헐? 레알? 네, 그렇댑니다. 주촌초등학교가 대단지 아파트 앞으로 이전하고, 옛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서 도서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구 아이디언지 몰라도 너무 멋집니다. 그리고 저, 주촌국민학교 나왔습니다. 51회 전교 회장 출신이디. 데헷! 그래서 이제는 멋진 이름을 가진 도서관으로 변신한 나의 모교에 설레임을 안고 갔습니다. 도서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했습니다. 이층에 있는 우아한 1인용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가지고 간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다 지겨.. 2020.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