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우라
나는 주말 내내 침묵을 지켰다. 월요일에는 예약도 없이 산부인과 진찰실에 찾아가 나팔관을 묶어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연거푸 질문을 던진 후 의사는 스케줄을 확인했다. 바로 그 주에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확신했다. (25쪽)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남친의 유혹에 넘어가 뜨밤을 보내고 난 뒤 후 라우라의 행동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고국 멕시코로 돌아온, 말하자면 상류층의 많이 배운 여성인 주인공은 자유분방한 삶을 살지만, 결혼과 출산에 있어서는 신념이 확고하다. 행복한 삶에 결혼과 출산은 절대적인 장애물이라는 신념.
# 알리나
"저를 재우지 말아주세요." 알리나는 분명히 말했다. "저는 이네를 만나고 싶어요. 얼굴을 보고, 가능한 한 모든 시간 동안 함께 있고 싶어요." (83쪽)
친구인 라우라와 함께 비혼과 비출산을 주장하던 알리나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기로 한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온 생명은 뇌가 자라지 않아 출산하자마자 사망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금방 죽을 것이라는 아이는 몇 주, 몇 달, 아니 몇 년을 산다. 알리나는 그렇게 미처 준비하지도 못하고 엄마가 된다.
# 도리스
"니콜라스는 어디에서 그 욕들을 배워오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당신은 그런 말을 쓰지 않는데요." "자기 아빠요." 한동안 남편이 폭력적으로 굴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니콜라스는 어릴 때 본 것을 이제 똑 같이 따라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아이 아빠가 되살아난 것 같아요." (109쪽)
초딩 문제아 니콜라스를 혼자 키우는 엄마. 라우라의 옆집에 산다. 예전에 뮤직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총격 사건이 일어나 기타리스트가 죽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후로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옆 집 사는 라우라가 니콜라스를 가끔 돌봐준다. 그리고 도리스도.
# 마를레네
"이네스가 계속 살아 있기를 바라세요, 아니면 저렇게 많이 아프니까 이제 그만 보내주고 그만 돌보기를 원하세요?" 마를레네는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 "이네스가 살기를 원해요, 마를레네." 마침내 알리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에요." (265쪽)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네스의 보모. 엄마인 알리사보다 더 애정을 가지고 아네스를 돌본다.
길지 않은 분량에 어렵지도 않다. 세 시간 반 정도만에 다 읽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읽다 덮었으며 읽는 내내 불편했다. 가능한 한 읽고 싶지 않은 부류의 책이다. 다 읽고 나서 따져 물었다. 왜 불편하지? 왜 외면하고 싶지?
나는 남중 남고 공대 건설회사 출신이다. 50년 가까이를 그렇게 여자와 단절된 사회에서 살았다. 여자와 소통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잘 돌봐야지'가 아니라 '돈을 열심히 벌어야지'라고 마음 먹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여자의 역할이고 그런 가족을 부양하는 건 남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 아냐?
더우기 여자의 행복이란 배우자를 만나고 자식을 낳고 한 가정을 이루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아이를 낳는 건 신이 여자에게만 주신 선물이다. 이런 선물을 한 번 개봉하지도 못하고, 아니 열어볼 생각도 없는 여자들은 자연의 섭리를 외면하는 거다. 이렇게 말하면 간디 교육을 받은 우리 아이들이 손가락질 하며 '매장'이라는 한 마디로 끝을 내버린다.
소설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돌봄, 엄마 되기 등. 아이를 낳는 고통과 기쁨, 이런 것들은 전혀 경험해보지 않아서 어떤 건지 상상이 안된다. 그러니 소설 속 여자들의 이야기가 낯설다. 더우기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자, 장애아를 가진 엄마, 말썽장이 소년과 생활력 없는 엄마의 모자 이야기와 같이 내가 가진 가치관 저편의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니 당연히 불편할 수 밖에.
라우라, 라우라의 엄마, 알리나, 마를레네, 도리스, 그리고 이네스까지, 이 소설의 모든 딸들이 유일무이하기에 아름답고, 그것 자체로 고귀한 삶을 마땅히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성도 부성도 아니며 - 어떤 사람들이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욱 징그럽게 주장하듯 - 그 둘이 다 있어야 하는 정상가족도 아닌, 공동체 속의 관계이다. (296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어쩌라구?를 연발하던 내게 옮긴이가 친절하게 답을 가르쳐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유일무이하게 아름답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딸들은 사회적 약자다. 남자에게 종속되는 관계가 아닌 그 자체로 고귀한 삶을 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라우라와 알리나 같은 우정의 공동체, 라우라와 도리스의 이웃 공동체, 라우라와 니콜라스, 알리나와 마를레네 같은 핏줄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또다른 형태의 가족 공동체, 그리고 라우라와 라우라의 엄마, 알리나와 이네스의 모녀 공동체 등. 소설 속 인물들은 이런 다양한 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소설 속 여자들이, 그들이 이루는 새로운 관계가, 불편하면 배움이 덜하다는 증거다. 아직 꼰대다.
'소설 (외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라를 말아 먹은 대통령을 찾아봤다 : 쥴피 리바넬리 <마지막 섬> (0) | 2024.09.23 |
---|---|
Chat GPT에게 독후감을 써달라고 했다 :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 차일드> (0) | 2024.09.22 |
백 년 전 일본의 시덥잖은 뒷담화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0) | 2024.09.04 |
바틀비를 인터뷰했다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0) | 2021.07.24 |
스토너라는 남자의 이승 여행기 : 존 윌리엄스 <스토너> (2) | 2021.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