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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야기

윤희순 작사 작곡 '안사람 의병가'라고 들어보셨나요? : 권숯돌 정용연 <의병장 희순>

by Keaton Kim 2020. 8. 15.

 

 

 

윤희순 작사 작곡 '안사람 의병가'라고 들어보셨나요? : 권숯돌 정용연 <의병장 희순> 

 

 

 

 

 

 

동학농민운동이 일본과 청나라의 방해와 진압으로 실패로 끝나고 그들은 서로 조선을 자기네들 거라고 우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두 나라는 한판 붙고 여기서 이긴 일본은 더욱 기고만장해졌습니다. 급기야 1895년 명성황후를 죽였습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머리를 깍게 하고 검은 옷을 입게 했습니다. 이에 유생을 중심으로 대규모 의병을 일으켜 일본을 물리치고 나라를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윤희순의 남편 유제원과 시아버지 유홍석은 이 의병의 핵심 인물이었고 집을 떠났습니다. 홀로 남은 윤희순은 의병들에게 밥도 해먹이고, 자금 조달책의 노릇도 하고, 의병 노래도 지어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1907년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다는 이유로 일본은 고종을 끌어내리고 군대를 해산시켰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들고 일어나 의병이 되어 매국노가 득실거리는 나라를 바꾸고자 했습니다. 윤희순는 후방에서 의병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직접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하여 군사 훈련을 하고 무기와 화약을 제조했습니다.

 

 

 

"빗맞았구래이~"

"눈꾀비 떼고 똑바로 존주야지 왜놈 대굴빡이 날아가지. 그래 가지고 되겄소야?"

 

아주머니가 열심히 뛰어와서 빗맞았다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정겹다. 대사와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있다. 아주머니들이 의병 훈련을 하면 진짜 저렇게 했을 것 같다. 순박한 강원도 아주머니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안사람 의병대'라는 이름도 우찌 이리 정겹노.

 

 

 

<안사람 의병가>  작사 작곡 : 윤희순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 시정 받들소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안사람 의병가라고 쳐보니 여기저기 희순 할매에 대한 내용이 많다. 심지어 유투브에는 노래도 있다. 구성진 가락이 일품이다.

 

사진 출처 : http://cafe.daum.net/NoStopJapan/pPY8/6?q=%EC%95%88%EC%82%AC%EB%9E%8C%20%EC%9D%98%EB%B3%91%EA%B0%80

 

 

 

'안사람 의병대'의 대장이자 그걸 만든 사람, 거기다가 작사 작곡까지, 요즘말로 하면 걸크러시 만땅의 핫한 아줌마가 윤희순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때가 윤희순의 나이 마흔여덟 살이었습니다. 지금의 40대 후반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당시에 그 나이면 거의 할머니였을텐데요. 희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여기가 이제 겨우 시작이었습니다. 1908년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이 너무나 허망하게 실패하고 나라를 빼앗기자 이듬해 의병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정들었던 춘천의 항골 안사람 의병단 아낙들과 헤어집니다. 이 장면을 두고 정용연 작가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의병장 희순>은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애정이 간다. 특히 윤희순 의사 일가가 중국 망명길에 오르는 장면을 그릴 때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스스로 놀랐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항골 아낙들이 떠나는 윤희순을 향해 노래 부르는 장면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 (p.421) 

 

 

 

책의 제목이 <의병장 희순>이지만, 중국으로 건너간 희순은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우선 중국의 척박한 땅에 벼농사를 지어 현지인들과 먹거리를 나눠 마음을 얻고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일깨웠습니다. 동창학교의 분교인 노학당을 세워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중국 각지에 흩어진 독립운동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뜻을 한데 뭉치게 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하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독립운동의 허리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권숯돌 작가는 윤희순의 독립운동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윤희순은 혼자 싸우지 않았다. 공동체 속에서 가부장적인 남자들과 협력했고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아우르며 독려했다. 조선 땅을 떠나 간도로 간 이후로는 중국인들과도 연대했다. 그런 일들이 어떻게 한 개인의 탁월함만으로 가능하거나 사회의 진보성만으로 탄생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둘 다였을 거라고 믿게 된다. (중략) 독립운동은 영웅적 개인의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도 단말마적인 외침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일으키며 함께 싸웠고 한 세대가 쓰러지면 다음 세대가 이러받아 다시 질기도 기나긴 여정을 함께 했다. (p.423)

 

 

 

중국 랴오닝성의 시골에 있는 공들인 비석이 노학당이 있던 자리라고 알려준다. 희순 할매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나만 여태 모르고 있었다. 춘천에 가면 생가터도 있고 동상도 있더라. 모두들 이렇게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뿌듯함이 올라온다.

 

사진 출처 : http://cafe.daum.net/phogrho37/Zr3J/1198?q=%EB%85%B8%ED%95%99%EB%8B%B9+%EA%B8%B0%EB%85%90%EB%B9%84&re=1

 

 

 

희순의 장남 돈상이 일제에 잡혀 모진 고문으로 자신의 품에서 죽고, 희순도 자신의 지난 날을 적은 적은 <일생록>을 마무리하고 고단했던 삶을 마칩니다. 일생록을 적던 책상에 엎드려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손자 손녀가 중국의 할머니 묘를 찾아 절을 하고 묘를 지켜주었던 중국 사람에게 감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로 그랬고 희순 할매의 유해를 우리나라로 가져오는 영상도 있더군요.

 

 

 

용서하거라.

죽음보다 어려운 삶을

너희에게만 떠안긴 채 혼자 떠나는 것을.

나라 잃은 백성으로 내 어찌

자식 잃은 슬픔을 혼자만 겪은 듯

유난스레 굴까마는,

이제는 정말 기력이 쇠하고 고단하여

쉬고 싶구나.

 

 

한 번도 나만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할미에게

마지막 이기심을 허락해다오.

할미가 다 마치지 못한 일기는

광복된 세상에서 너희가 채워주기 바란다.

그리고 부디 기억해다오.

좋은 옷, 기름진 음식, 푹신한 잠자리에

입히고 먹이고 누이진 목했으나

우리는 너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것을.

 

 

무엇을 지키려 했냐고? 

글쎄다.

때로 그것은 누군가에게 가족이었고 누군가에겐 이름이었고

목숨이었고 땅이었고 하늘이었고 지존이었고 독립이었을테지.

 

 

그러나 그 대답은 좀 미뤄두기로 하자.

우리가 그토록 처절히 지키려 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훗날 너희가 우리게게 가르쳐주지 않겠느냐?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이다. (p.411)

 

 

 

희순 할매가 유언처럼 남기고 간 말입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그 충격으로 스스로 고단한 삶을 마감합니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그리고 일생을 바쳐 싸운 싸운 의미를 되새겨 보라고 하는 말씀이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제가 몰랐던 역사의 인물을 만나면 재미있습니다. 그게 독립운동가라면 더 반갑습니다.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부끄러움, 이제 알게 되었다는 안도감, 인물의 인생을 만난 즐거움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꼭 기억하겠다는 사명감도 함께 듭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들어 주신 권숯돌 작가님과 정용연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더우기 정용연 작가님은 자신의 책에 좋은 글과 그림을 직접 그려 보내주시니 그 정성이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친구 현규에게 자랑해야겠습니다. "니는 받았나? 나는 받았다."라고요. 엄청 배 아파 할겁니다ㅋㅋ.

 

 

 

아내에게 책 자랑을 하니 아내가 머그컵에다 희순 할매 그림을 그려 보내자고 합니다. 아내의 마음이 예쁩니다. 선물이 완성되는 대로 보낼께요. 용연 작가님, 기대해 주세요^^.

 

 

 

P.S. 

그리고 용연 작가님께 보낼 선물이 완성되었습니다. 사진을 보내니 작가님도 기뻐합니다. 작가님이 기뻐하시니 나도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