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 이야기

살아 있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결국 같은 거야 : 켄 크림슈타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by 개락당 대표 2019. 4. 17.

 

 

 

살아 있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결국 같은 거야 : 켄 크림슈타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악의 평범성

 

 

 

1960년 5월 이스라엘 비밀경찰이 아르헨티나에서 나치 전범 한 명을 체포했습니다.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가 있는 그는 독일이 패망할 때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15년을 숨어 지냈다가 드디어 발각된 것입니다.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특별 취재원 자격으로 이 재판 과정을 취재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아이히만의 모습은 아주 충격적이었습니다.

 

 

 

무려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에 가담한 살인마가 아닌가? 인간이라면 도저히 그런 미친 짓은 못하지. 머리에 뿔리 달리고, 남의 고통을 즐기며, 피에 굶주린 악마임에 분명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이히만은 너무나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심지어 평소에 매우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을 특별히 미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가장이자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인 시민이었던 그는 재판 내내 '명령에 따랐을 뿐' 이라고 답했습니다. 그가 관심이 있었던 건 맡은 일을 잘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행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재판 과정을 온전히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결론을 내립니다. '악은 평범하다.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결국 사형이라는 가장 중한 벌을 받았고,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사.유.하.지. 않은 죄로 말이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간디 학교에 가면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다.

잘 먹고 잘 놀고 가끔은 사유하자.

누가 지었을까? 이렇게 멋드러지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말을.

 

사진 출처 : http://www.wbcb.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738

 

 

 

한나 아렌트는 서경식 교수의 글과 책, 그리고 프레모 레비의 책에서 만났습니다. 그래봤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내었다는 거 외에는 별루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녀의 책을 한번 읽어보리라 생각했더랬는데, 며칠 전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와락 반가움이 덮쳤습니다. 그것도 만화라니요.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바로 결재했습니다.

 

 

 

책은 한나 아렌트의 일대기입니다. 격동과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그녀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나치의 박해로 여러 나라를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이 담배 연기처럼 뭉뚱하면서도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서툰 듯한 그림이 볼수록 매력적이며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또한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지식인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연인이었던 하이데거를 비롯해서 발터 벤야민, 마르크 샤갈, 아인슈타인, 장 뤽 고다르 등의 모습도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갑니다.

 

 

 

제목이 '세 번의 탈출'입니다. 대학 졸업 후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프랑스로, 그리고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에서 다시 미국으로 탈출하여 망명합니다. 근데 마지막 탈출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감수를 맡은 김선욱 교수는 이 책의 방점이 세 번째 탈출에 있다고 합니다. 여태 가지고 있는 삶을 뛰어넘어 그녀만의 사상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세 번째 탈출이라 표현했습니다.

 

 

 

인류는 이렇다, 인류는 저렇다.

마르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건 인류가 아니에요.

인간들이죠.

한 명 한 명의 남자와 여자, 아이요.

 

 

 

한나, 잘 들으렴. 누가 그런 말을 하거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 유대인이라고 공격받으면 유대인이라는 사실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단다.

 

한나 아렌트 어머니의 저 말이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평생 동반자였다. 두 번째 탈출도 함께 한다. 나치 독일의 시대에 한나 자신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긴다.

 

 

 

한나, 너를 보는 순간 내게 영적인 힘이 임했다. 네 두 손과 빛나는 이마가 묵도를 울리는구나. 내 평생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17살 한나와 34살 하이데거와의 만남. 하이데거는 저런 멋진 문장으로 한나를 꼬신다. 그리고 그들은 일생의 사랑이 된다.

 

 

 

내 혀는 굳어버리고 온몸에는 미세한 불길이 솟아올라 눈앞이 캄캄하고 귓속은 둥둥거리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으니 마른 풀처럼 창백해진 나는 광기로 죽어버리기 직전이라네.

 

그녀를 취조하는 피터에게 사포의 시를 들려주는 한나 아렌트. 그녀의 손가락엔 언제나 담배가 들려져 있다.

 

 

 

벤야민의 습관 중에서 특히 멋있는 건 파리 구석구석을 한량처럼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는 것이었는데, 참여적이면서도 무관심한 그의 관찰은 세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그날의 여정을 말로 풀어놓을 때면 반은 구경꾼, 반은 연기자로 자신의 그런 역할에 완전히 몰두하곤 했다.

 

발터 벤야민을 묘사한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한나에게 벤야민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파리에서 탈출에 성공한 한나와 간발의 차이로 그러지 못한 발터 벤야민. 벤야민은 스페인 국경의 포르트부에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묘지와 다니 카라반이 설치한 추모 작품 'Passages'가 그곳에 있다. 그 작품을 보는 것이 나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다.

 

 

 

불이 산소를 연료로 살아간다면, 전체주의의 산소는 거짓이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독일이 어떻게 가스실을 만들었는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조건을 빼앗아버리는 힘은 정녕 무엇인지, 그리고 그 힘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이 완성되어 가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과 같은 저서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아이히만을 사악한 괴물이락 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그의 범죄를 용서해주는 거야. 그리고 우리 모두 잠재적인 죄를 짓게 되지. 철저하게 사유하지 못한 죄.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그가 프량켄슈타인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서 오히려 그가 저지른 범죄가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는 어떤가? 얼마나 깊이 철저하게 사유하고 있나? 내가 사유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나? 대답이 어렵다.

 

 

 

살아 있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결국 같은 거야.

 

격동과 혼돈의 시대에 모진 수난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하며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던 한나 아렌트. 삶은 철저한 사유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꽃잎이 흩날리는 봄 날, 그네에 앉아 한나 아렌트의 일생을 들여다 봤습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갑니다. 따뜻한 봄바람이 몸을 스쳐갑니다. 사유하고 행동하는 사람만이 살아있다는 그녀의 말이 맴돕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