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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공간도 그렇다 : 김종진 <공간 공감>

by Keaton Kim 2020. 5. 19.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공간도 그렇다 : 김종진 <공간 공감> 

 

 

 

 

 

 

스페인 여행 중 세계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림에 무지 조예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날 공교롭게도 공짜라고 해서 갔습니다. 고2 아들넘이랑 함께 들렀는데, 일단 무지 넓었습니다. 그림도 억수로 많았습니다. 고야의 그림이 유명하다고 해서 봤는데 그닥 감흥이 없었습니다.

 

 

 

산아, 저 쪽에 그림은 억수로 크네.

그렇네요. 저거 그릴라믄 물감도 많이 들고 힘들었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림에 대해 무지한 아들과 나는 겨우 그림의 크기에 대해서 감탄합니다. 뭘 알아야 눈에 보일텐테 그렇지 못하니 보일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감동도 없지요.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여기서 며칠을 머물며 감상을 한다는데, 우린 겨우 두세 시간 발걸음을 옮기다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미술관 뒤에 있는 이름 모를 성당에서는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미술과 음악, 문학과 건축은 어떤 시대와 상관없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예술입니다. 근데 이게 관심을 가지고 오래, 자세히 봐야 보입니다. 유홍준 선생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씀은 비단 문화재에 한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건축은 특히 다른  분야의 예술과는 다르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주 접하게 되는 생활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보면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 일상이자 작품입니다. 

 

 

 

물론 아무런 지식이 없어도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공간이 있습니다. 옛집의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을 때, 혹은 높은 천정과 아치형 기둥의 장엄한 성당에 들어갈 때, 우리는 편안함과 엄숙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공간에 대해 기초 지식을 가지고 관심을 보인다면 그 공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의미를 주게 됩니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정말 헉! 하고 숨이 막혔다. 이런 공간이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바깥에서 본 와플 모양의 창이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연출을 하고 있을 줄이야. 베를린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다.

 

 

이 교회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모습으로 유명한데, 사실 총알 자국이 무수히 박혀 있는 옛 교회를 보러 왔다. 근데 바로 옆에 이렇게 새로 지은 교회가 떡하니 있었고 그 내부의 모습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파란색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나오는 푸른 빛이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년에 석달 동안 서유럽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주로 건축물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래서 어떤 도시가 가장 인상적이냐고 물으면 망설임없이 로마라고 대답합니다. 역시 콜로세움과 베드로 성당이 있는 로마의 건축이 대단하긴 하지, 유럽의 모태가 된 도시니....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건축물로 따지자면 로마보다는 현대 건축의 성지인 베를린이나 피터 줌터 할배의 작품이 있는 독일의 작은 도시가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 경관을 보자면 스위스의 발스가 으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를 꼽은 건, 만난 로마에 머무르는 동안 거기사 만난 여인과 내내 함께 다녔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에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함께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포로 로마노를 돌아다니고, 나보나 광장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으며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 장소를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다른 곳보다 많습니다.

 

 

 

책에도 이탈리아 문학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예로 들며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도시 공간과 사물의 의미는 삶과의 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도시를 이루고 있는 계단이나 주랑은 그 형태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특정한 사건의 만남이 중요하지요. 그 계단에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을 했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될 겁니다.

 

 

 

집이라는 공간은 특히 그러합니다.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의 감정이 묻어 나는 곳이자 나를 포근하게 보듬어 주는 공간입니다. 단순히 어떤 재료로 지었는가, 몇 평인가, 어떤 회사가 지은 아파트인가 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공간이지요. "좋은 집이란 거주하는 사람의 삶의 흔적이 서서히 누적되어 그 사람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그런 집이지요." 정기용 선생의 집에 대한 정의가 딱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에는 천정의 큰 구멍 아래에 오직 한 작품만 전시되어 있다.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조각이다. 전쟁으로 잃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그 슬픔이 덩그러이 놓인 조각상의 분위기와 더해져 엄숙하게 마음에 퍼졌다.

 

 

넓은 공간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천정에서 내려오는 빛의 움직임을 따라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변했다. 몇몇의 사람들이 왔다가고, 단체 관람객들도 다녀갔지만 나는 그대로 쪼그려 앉아서 조각과 조각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빛이 만들어내는 여러 형태를 보았다. 그 공간 속에서 나는 점점 옅어졌고 결국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이 책은 공간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공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리 머릿속으로 공간을 규정하지 않기 위함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세계를 규정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고 위험한 작업이다. 또한 이 책이 건드릴 범위도 아니다.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먼저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기를 제안한다. 빛을 이야기하기 전에 새벽안개와 밤하늘에 젖어보는 일, 냄새를 분석하기 전에 비 온 뒤의 비릿한 골목길을 걸어보는 일, 촉각을 설명하기 전에 맨발로 오솔길을 걸어보는 일, 그 살아있는 체험이 먼저다. 그리고 그러한 실제의 경험이 각자의 삶에서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 (p.7 들어가는 말 중에서)

 

 

 

책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공간을 거닐고 머무르며, 빛을 통해 공간을 바라보고, 공간의 향기를 맡고, 듣고, 만지고, 그래서 그 공간을 기억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그 공간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스미게 되고 그런 훈련?으로 공간을 좀 더 잘 느끼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잘 반응하게 되는 것이죠. 감각을 깨우는 공간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줍니다. 이 책에서 공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위에 인용한 말입니다.

 

 

 

유럽 여행에서 인상적인 공간 탑 쓰리에 꼽을 수 있는 피터 줌터 할배의 브루더 클라우스(Bruder Klaus) 회. 쾰른 인근의 바헨도르프(Wachendorf)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여기 가려면 Satzvey라는 역에 내려 한시간 반 정도 걸어야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름 태양에 지쳐갈 때쯤 저 멀리 노란 밀밭 한 가운데에 쨘하고 나타났다. 태초에 시간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한 것처럼 우뚝 서 있었다. 

 

 

내부에 나무 거푸집을 세우고 40센티씩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구조물이 완성되었을 때 나무 거푸집을 3주 동안 태워서 저 모양이 되었다. 거친 마감과 그을음의 흔적이 사라진 존재를 재현한다. 육중한 삼각형 모양의 문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이며,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면 저런 형태의 빛 그림자가 생긴다.  

 

 

안에서 올려본 물방울 모양의 오큘러스(둥근 창). 이곳 농부 부부를 위해 지어서 내부는 너댓명이 들어가서 예배보기 딱 좋을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스포트라이트 같은 빛과 내부의 거친 음각과 그을음, 아무런 장식도 없이 이 공간에 켜진 작은 촛불 하나와 조각. 이 공간에 들어오면 온몸의 감각이 털이 서듯 일어난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공간의 경험이다.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뭔가 막연했는데,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가이드가 되었습니다. 공간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독일 슈바르츠발트의 하이데거 오두막, 덴마크의 루이지아나 현대미술관,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산 갈가노 수도원 등도 저에겐 공부가 되었습니다.

 

 

 

공간이라는 건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 공간과 나와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좋은 공간이란 그 경험을 풍성하게 해주는 공간이겠지요. 빛과 그림자를 느끼고, 계절이 바뀌는 걸 실감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하고, 내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요. 좋은 공간이 많아지면 나의 경험이 풍부해지고 그건 곧 내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입니다. 너무 저의 방식대로 해석했나요?ㅎㅎ 저자도 그렇다고 합니다.

 

 

 

결국, 공간의 구축은 경험의 구축이자 삶의 구축이다. 공간을 거니는 것은 삶을 거니는 것이다. 공간을 향기 맡고, 듣고, 만지는 것은 삶의 향기를 맡고, 듣고, 만지는 것이다. 공간을 기억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 (p.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