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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건축이 행해지는 장소에 대해 미안해하는 건축가 : 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by Keaton Kim 2020. 4. 14.

 

 

 

건축이 행해지는 장소에 대해 미안해하는 건축가 : 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 정기용

 

 

 

 

 

 

1.

건축과 도시는 인간의 삶을 다루되 공간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흔히 사람들은 착각에 빠진다. 즉 건축이나 도시를 바라볼 때 공간의 '형태'라는 시각적 대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감각적으로 또는 감성적으로만 대하는 오류를 범한 나머지 심지어 건축을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을 구태여 학문적으로 분류하자면 예술이나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 사회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건축과 도시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조직하고 사회를 다루는 분야로 인문, 사회과학과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p.7)

 

 

건축은 예술이나 기술이 아니라 인문이고 사회과학이라니. 다른 이도 아니고 건축가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여태 내가 아는 건축은 기술이었고, 좀 더 나아가면 예술이었다. 선생의 저 말은, 건축은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지만 진짜 의미를 지니려면 그걸 사용하는 사람의 삶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주에 선생의 작품이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훼손되어 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2.

"좋은 집이란 어떤 것입니까?" 나는 대답했다. "좋은 집이란 거주하는 사람의 삶의 흔적이 서서히 누적되어 그 사람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그런 집이지요." (p.21)

 

 

절대 푸르지오나 자이나 레미안이 아니다. 집에 대한 가장 명쾌한 정의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

 

 

 

3.

빼어난 경관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생명체로 보던 옛사람들의 특권만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옛 조상들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요즘 사람들은 전통건축을 밖에서 쳐다보려고만 할 뿐 안에서 밖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전통건축에서 조상들의 지혜를 찾는다면 그것은 건물을 밖에서 감상하는 태도-관광객처럼-에 있지 않고, 안에서 밖으로 '무엇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가늠하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 조상들은 건물을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기 위해 지었기 때문이다. (p.91)

 

 

예전에 지었던 아파트의 이름은 땡땡 오션뷰였다. 바다가 보인다고 회사에서 그렇게 네이밍을 했다. 물론 아파트에서 바다가 보였다. 8개동 중에서 2개동만. 나머지 6개동은 아예 보이지가 않거나 진짜 손톱만큼 바다가 보였다. 대부분 앞을 내다보면 앞동이 보인다. 뒤를 내다보면 뒷동이 보이고. 이게 우리네 아파트의 실상이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마루에 앉아서 보는 풍경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4.

서울의 경우, 무교동 골목 속의 벼랑 끝에 선 조그만 음식점들이 쫓겨나고, 잘 뒤지면 헬리콥터도 조립할 수 있다는 잠재력이 가득한 청계천 철물상들과 을지로와 퇴계로 사이의 영세한 인쇄소들이 사라지는 날, 서울의 구도심은 완전히 제3차 산업의 업무기지화가 되면서 공동화된 반인본주의적 공간으로 변할 것이다. 소상인과 서민들이 이룩한 역동적인 도시의 삶은 사라지고, 살아 숨쉬던 도시는 얼어붙은 표정을 할 것이다. 아마도 도시는 시각적으로 더욱더 세련되고 정돈되고 청결해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해가 지면서 도시는 을씨년스러워지고 건물의 경비원들과 청소부들만이 600년 고도의 밤을 지새울 것이다. (p.133)

 

 

벌써 그렇게 되고 있다. 예전에 다니던 곰탕집은 벌써 없어지고 그 자리엔 삐까번쩍한 건물이 들어섰다. 낡은 주택과 상가 건물이 새로운 업무공간으로 변신하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발버둥을 치고 있다. 종로3가와 익선동이 좋은 예다. 한옥은 개성있는 커피숍과 레스토랑으로 변했으며 길거리 고기집은 더 번창하고 있다. 다행이 선생의 예언은 빗나가고 있어서.

 

 

 

 

 

 

진해 기적의 도서관

 

 

 

5.

아파트는 이 시대의 꿈이요 행복의 좌표다. 아파트는 산자락이고 논바닥이고 도시 한복판이고 넓고 빈 땅만 있으면 자라난다. 모내기를 하는 것보다 수천 배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아파트가 자란다. 땅이 없으면 집을 뭉개버려서라도 자라게 해야 한다. (p.183)

 

 

아직도 쑥쑥 자란다. 이 공룡의 끝이 어딘지 생각해본다. 한 세대가 지나고 이 넘을 다시 부수고 새로 짓는 행위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 시기다. 오래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그러나 부수지도 못하는 슬럼 아파트가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 아파트의 종말이자 재앙이다.

 

 

 

6.

공급 위주의 교육에서 수요자(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으로부터 개별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위한 학교건축은 바로 '다양한 공간' '신축성 있는 공간' '심성을 일깨우는 공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소위 안팎으로 '공간의 질'을 일깨워주고, 빛과 그림자를 가르쳐주고, 시간과 계절을 느끼게 해주며, 공간의 영역을 구분할 줄 알며, 이 땅의 신성함을 깨닫고, 기중과 벽체나 돌부리에 유년 시절의 기억을 저장할 줄 알도록 하는 것, 그것은 어떤 지식교육보다도 중요한 '나와 사물'을 대하고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심성교육이다. (p.254)

 

 

학교건축은 가장 시대에 뒤처진 건축이다. 요즘은 면사무소도 학교보다 훨씬 아름답게 짓는다. 학교는 감수성이 예민한 유년기와 청년기 12년을 보내는 곳인데. 이젠 진짜 바뀔 때도 되었다.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일인데, 학교 건물을 시대에 맞게 바꾸겠다거나 학교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고 갈 수 있게 자전거 도로를 만들겠다는 후보는 하나도 없다. 진짜 필요한 건데.

 

 

 

 

 

 

 

제주 기적의 도서관

 

 

 

7.

나는 언젠가 서울건축학교 신입생 면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을 물었을 때 학생마다 예외 없이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이나 투레트수도원 또는 루이스 칸의 솔크 인스티튜트라는 말을 들었다. 학생들에게 이 말을 듣고 동료 건축가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건축의 발전을 위해선 우상숭배하듯 하는 이 건물들을 다 때려 부숴야 하겠다."라고. (p.259)

 

 

선생은 남들이 좋다고 따라 좋아하기보다는 그 건축이 탄생하게 된 시대와 역사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맞다. 그 건물이 가진 이야기를 알게 되면 더 멋져 보인다. 근데 롱샹성당은 정말 좋았다.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헉! 했다. 남들이 좋다는 건축은 다 이유가 있다. 선생님 죄송해유~~~

 

 

 

8.

건축만이 한 시대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건축만큼 이 시대의 추악한 얼굴을 철저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는 듯하다.

 

 

건축은 문학이나 미술, 음악에 버금갈 만큼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 로마는 콜로세움, 두바이는 버즈 칼리파 등 우리가 여행을 가서 가장 먼저 가는 곳이 바로 건축물이다. 그 시대에 인류가 남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면은 생각치 못했다. 선생은 이상보다는 현실에 촛점을 맞춘다.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9.

정부 제1청사가 광화문 발밑에 불쑥 토를 내밀고, 여의도광장에 정체불명의 고사떡 같은 국회의사당이 서고, 경복궁 안에 기가 막힌 한국 전통건축의 조합으로 국립박물관을 축조하고 있을 때, 우리 건축인들은 어떤 발언을 하였는가? <창작과 비평>에서 소외된 계층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하고 억압받던 대중의 인권을 회복하려 투쟁하고 있을 때,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한 노동자들이 항쟁하고 있을 때, 우리 건축인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건축주가 요청하는 대로 공장을 찍어냈고, 대기업의 연수원을 예쁘게 고안하였으며, 건설회사가 요청하는 대로 아파트 평면을 찍어냈으며, 재개발 프로젝트를 따내려고 혈안이었으며, 새마을 운동의 농촌 시범주택의 모범답안을 만들어주었다. (p.299)

 

 

선생의 약력으로 보자면 절대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가 아닌 완전 엘리트 코스를 밟았는데, 선생이 보는 건 오직 현실이고 사람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건축가는 시대의 지식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실천하셨다. 선생을 존경하는 대목이다.

 

 

 

10.

DMZ보다 더 확실하고 극명한 전쟁의 기념비는 없다. 그 자체가 기념비이며 비극적 역사의 증표인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어야 하는 땅이다. 그렇게 50년이고 100년 동안 인간의 손길이 못 미치게 함으로써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의미있는 기념비를 갖게 될 것이다. 기념이 없는 기념비,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낸 기념비는 그 어떤 창의적인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p.340)

 

 

인위적인 시설이 아무것도 없는 기념비. 선생의 말씀은 정녕 옳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걸 개발한다고 하면 나는 진짜 거리로 나갈테다. 그것만은 보존하자고. 

 

 

 

 

 

 

정읍 기적의 도서관

 

 

 

11.

그러므로 나는 전쟁기념관의 건축적 분석을 진행하기보다는 또 다른 예를 들어 대비시켜보고자 한다. 이것은 내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전쟁기념관이 아니라 '기억'을 주제로 한 건축, 즉 무엇을 기념하는 건축이 이 시대의 도시 속에서, 또한 현대 건축언어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이미 전쟁기념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건축적 의미보다는 권력의 속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349)

 

 

전쟁기념관? 그런 게 있었어? 찾아보니 용산에 있네. 사진으로만 봐도 권력의 속성이 흠씬 묻어난다. 어찌 그 시대의 건축은 다 이럴까. 선생이 통탄할 만 하다. 선생은 그 대비로 파리에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한 20만 명의 희생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들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그럴듯 하다. 내가 유럽에서 봐 왔던 기.억.에 관한 건축물들과 비슷하다. 채우려고 하지 않고 비워두는 것. 그 비움을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 선생이 바라는 기념관이다.

 

 

 

12.

정기용 선생은 '감응의 건축가'입니다. 정기용 선생은 자신의 건축이 행해지는 장소에 대해 미안해하는 희귀한 건축가입니다. 우리의 척박한 공간문화는 모두가 자신을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사회는 결국 '상호가해적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만인은 만인의 적'인 야만의 사회입니다. 정기용 선생은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사람들이 자연을 존중하는 건축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기용 성생은 야만의 사회를 진정한 문화의 사회로 바꾸는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습니다. (p.418 정기용 전집 출간에 관해, 홍성태)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할 때 선생을 알게 되었다면 건축가가 되었을까? 결과는 잘 모르지만 아마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꽤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야만적 건축을 본업으로 하는 건설회사를 그만둔 것에 선생의 말씀이 적지 않은 작용을 한 것은 분명하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노가다 외에 할 일이 없다. 할줄 아는 것도 없고. 여태 놀고 있다. 아, 큰일이다. 

 

 

 

 

 

김해 기적의 도서관

선생이 작업하신 6개(순천, 진해, 제주, 서귀포, 정읍, 김해)의 기적의 도서관

위의 모든 사진 출처 : http://www.gu-yon.com/m2/m2_1-6.html

 

 

 

선생이 설계하신 도서관을 사진으로 올렸다. 화려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외관이 아니다. 가끔 다니는 울동네 기적의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안에서 머무르며 책을 읽어야 진가가 드러난다. 선생의 건축물은 다 그렇다. 보고 만지고 머무르며 생활해야 그 가치를 안다. 그러라고 선생이 만드셨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좋게만 지은 건물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다. 건축물은 주어진 터와 거기서 살아갈 사람의 '관계맺음'을 위해 만들어지는 공간인프라다. - 정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