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문집에 바람의 이야기와 텅 빈 벤치 사진이 나옵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스위스 여행이 떠올랐습니다. 5년 동안 한번도 기억에 올린 적이 없던 장면이 머리 속에 나타난 겁니다. 참 이상하지요, 어떤 메카니즘이 기억 저 편에 있던 그 장면을 불러왔을까요? 그래서 유럽 여행의 사진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습니다. 위의 사진입니다. 숨비츠라는 작은 마을에 여행자를 위한 벤치와 그 벤치에서 앉아 본 풍경입니다.
페터 춤토르의 성 베네틱트 교회는 스위스의 숨비츠에 있습니다. 거의 숨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 건축 공부를 할 때 사진을 보고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맘 먹었더랬습니다. 밀라노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기차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고 무인역인 숨비츠에 내려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도착하여 만난 선생의 작품은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억에 더욱 선명한 건, 채플에 가기까지의 여정입니다. 1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풍광에 넋을 잃고 걷다 보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꽤 오래 걸렸습니다.
그 때 혼자 저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실제로 고흐는 그곳에서 미쳐가는 정신과 싸우며 그림을 그렸고, 싸구려 포도주와 담배에 의지해 피로와 고독을 견뎠다. 당대의 인상파 화가들이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모여 오히려 "나는 성공이 끔찍스럽다"고 말했던 고흐는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의 열정에 따라 살았다.
고흐의 다락방은 카페 3층에 있었다. 한 사람이 간신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나무계단는 너무 낡아서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렸다. 세월의 때가 시커멓게 묻어 있는 벽과 복도에는 금이 쩍쩍 가 있었다. 관림 인원을 한 번에 대여섯 명으로 제한하는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수도사나 은둔자의 거처보다도 남루한 방에는 밀짚의자 하나가 덩그러이, 그가 남기고 간 영혼처럼 놓여 있었다. (121쪽)
황금소로 22번지는 특히 규모가 작아서 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는 낮에는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뒤에는 여기 와서 밤늦게까지 글을 썼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카프카는 끝내 자기만의 집을 갖지 못했다. 몇 번의 연애와 약혼 역시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카프카가 밤늦게 소설을 쓸 때, 석회벽에는 오직 그의 그림자만이 어룽거렸을 것이다. 고독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러나 경이로 가득찬 밤. 그 막다른 방은 삶을 초과한 어떤 삶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절멸의 두려움과 고독이 피워낸 꽃에 대해, 또는 황금에 대해. (123쪽)
안네의 집 창문들은 모두 당시처럼 검은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안네가 간절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적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보고, 청춘을 맛보고,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러나 한창 뛰어놀고 꿈꿀 나이에 안네는 그 소박한 소망을 표현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었다. 문을 나서면서 보니, 문설주 옆에 안네 자매의 키를 날짜와 함께 표시해둔 눈금들이 남아 있다. 그 희미한 눈금들은 그들이 버틴 날들에 대한 기록이자 희망의 바로미터였으리라. 창밖의 밤나무가 자라는 동안 어두운 방 안에서도 아이들은 자랐을 것이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죽음을 향해. (127쪽)
- 내 삶을 더욱 강인하게 단련할 필요성
- 맹목적인 분노는 소용이 없다는 사실
- 사람과 만나는 것을 줄일 것
- 작업과 고독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
-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지켜나갈 것
- 낭비를 줄일 것
- 시에 대해 더욱 치열해지자
미국 시인 에이드리안 리치의 일기의 한 대목입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자신의 생활과 내면을 다잡으려는 치열한 노력이 느껴지는 구절이라, 작가가 다시 적어서 책상 위에 붙여두었다고 합니다. 소모적인 일과 약속을 최대한 줄이고 작업과 고독의 시간을 많이 가지자고 했습니다.
고흐와 카프카, 안네의 방을 묘사한 구절을 옮겨 위에 썼습니다만, 그들도 아주 심플한 공간에서 고독의 시간과 싸우며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환경보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글도 그림도 더 치열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견디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해야 될 일만 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나를 갉아먹고 있는 일들을 멀리 하고,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해야 합니다. 리치도 나희덕도 더 치열해지자고 합니다. 시인들도 그럴진대 나는 더욱 그래야합니다.
나태해진 나의 영혼에게 던지는 말입니다.
'수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희가 노인력을 아느냐 : 아카세가와 겐페이 <노인력> (0) | 2025.03.11 |
---|---|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 : 림태주 <관계의 물리학> (0) | 2024.10.03 |
늙기의 즐거움, 늙기의 자연스러움, 늙기의 두려움 : 김훈 <허송세월> (0) | 2024.09.21 |
이러다 곧 온다 : 실버 센류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2) | 2024.09.03 |
형편없이 살고 있는 나에게 :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0) | 2021.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