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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야기

스위스 시골 마을의 작은 벤치가 생각납니다 : 나희덕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by 개락당 대표 2024. 11. 16.

 

 

 

 

 

이 산문집에 바람의 이야기와 텅 빈 벤치 사진이 나옵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스위스 여행이 떠올랐습니다. 5년 동안 한번도 기억에 올린 적이 없던 장면이 머리 속에 나타난 겁니다. 참 이상하지요, 어떤 메카니즘이 기억 저 편에 있던 그 장면을 불러왔을까요? 그래서 유럽 여행의 사진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습니다. 위의 사진입니다. 숨비츠라는 작은 마을에 여행자를 위한 벤치와 그 벤치에서 앉아 본 풍경입니다.  

 

페터 춤토르의 성 베네틱트 교회는 스위스의 숨비츠에 있습니다. 거의 숨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 건축 공부를 할 때 사진을 보고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맘 먹었더랬습니다. 밀라노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기차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고 무인역인 숨비츠에 내려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도착하여 만난 선생의 작품은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기억에 더욱 선명한 건, 채플에 가기까지의 여정입니다. 1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풍광에 넋을 잃고 걷다 보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꽤 오래 걸렸습니다. 

 

그 때 혼자 저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밀라노를 출발해 루가노, 벨린초나, 안데르마트, 디센티스를 거쳐 숨비츠로 가는 여정이다. 스위스의 어느 환승역에서 본 풍경

 

 

알프스를 올라가는 경사가 너무 급해서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 하는 기억이 있던 기차역

 

 

스위는 기차도 예쁘다

 

 

기차 안의 천진난만한 아이들. 세계 어디서나 똑 같다.

 

 

창 밖의 풍광. 현실 세계가 아닌 듯. 여러번 기차를 갈아타고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간 길이 스위스의 3대 아름다운 기차길에 포함되어 있었다. 지붕이 유리로 된 관광 열차도 지나갔다.

 

 

그렇게 당도한 숨비츠. 너무 작은 마을이라 무인역이다.

 

 

배낭의 무거움도 혼자라는 외로움도 풍광에 압도당했다. 채플로 가는길.

 

 

길에 보이는 집.

 

 

풍광이 좋은 곳에는 꼭 이렇게 벤치가 있다. 앉지 않을 수 없다.

 

 

여행자를 위한 벤치라고 이 작은 마을에서 만들어놨단다. 심지어 벤치 번호도 있다.

 

 

그 벤치에 앉아 본 풍경

 

 

그렇게 계속 간다.

 

 

말 형님도 만나고.

 

알프스를 한참 올라서야 만나는 마을. 다 왔다.

 

 

저기 보이는 게 성 베네틱트 채플이다. 정말 작은 동네에 세운 교회다. 춤토르 선생의 초기작이다.

 

 

경사지에 세웠고 전체 형태를 온전히 보면 이렇게 생겼다.

 

 

아래쪽에서 보면 의외로 웅장한 매스다.

 

 

눈에 띠는 우드 싱글 외벽. 해를 보는 쪽과 보지 않는 쪽의 우드 색이 세월의 무게로 달라졌다.

 

 

경사지에 놓인 계단. 웰컴이 반갑다.

 

 

내부 모습. 열 댓 평 정도 될까. 구조체가 모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장식처럼 보인다. 건축을 하기 전에는 목공이었다고 하더마, 솜씨가 대단하다. 대단한 디테일이다.

 

 

천정의 모습. 배 모양 같기도 하고. 디테일에 자신이 있어야 저렇게 노출할 수 있다.

 

 

내부 전면쪽. 심플함을 넘어서 뭐라고 할까. 단아하다고 할까. 극단적인 단순함을 추구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다. 춤토르 선생 작품의 가치다.

 

 

내부 후면. 미니멀리즘을 달린다. 거장들의 건축은 수식이 필요없다. 오직 정수로 승부한다.

 

 

측창. 빛이 들어오는 통로다. 일부는 저렇게 개폐가 되게 하여 바람도 들어오게 만들었다.

 

 

엽서도 몇 장 보이고

 

 

채플이 보이는 곳에 앉아 경치도 보고 밥도 먹었다.

 

 

두 시간 쯤 지나 만난 처음 만난 관광객인 건축학도에게 부탁해서 찍은 컷

 

 

실제로 고흐는 그곳에서 미쳐가는 정신과 싸우며 그림을 그렸고, 싸구려 포도주와 담배에 의지해 피로와 고독을 견뎠다. 당대의 인상파 화가들이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모여 오히려 "나는 성공이 끔찍스럽다"고 말했던 고흐는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의 열정에 따라 살았다.

 

고흐의 다락방은 카페 3층에 있었다. 한 사람이 간신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나무계단는 너무 낡아서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렸다. 세월의 때가 시커멓게 묻어 있는 벽과 복도에는 금이 쩍쩍 가 있었다. 관림 인원을 한 번에 대여섯 명으로 제한하는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수도사나 은둔자의 거처보다도 남루한 방에는 밀짚의자 하나가 덩그러이, 그가 남기고 간 영혼처럼 놓여 있었다. (121쪽)

 

 

황금소로 22번지는 특히 규모가 작아서 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는 낮에는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뒤에는 여기 와서 밤늦게까지 글을 썼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카프카는 끝내 자기만의 집을 갖지 못했다. 몇 번의 연애와 약혼 역시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카프카가 밤늦게 소설을 쓸 때, 석회벽에는 오직 그의 그림자만이 어룽거렸을 것이다. 고독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러나 경이로 가득찬 밤. 그 막다른 방은 삶을 초과한 어떤 삶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절멸의 두려움과 고독이 피워낸 꽃에 대해, 또는 황금에 대해. (123쪽)

 

 

안네의 집 창문들은 모두 당시처럼 검은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안네가 간절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적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보고, 청춘을 맛보고,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그러나 한창 뛰어놀고 꿈꿀 나이에 안네는 그 소박한 소망을 표현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었다. 문을 나서면서 보니, 문설주 옆에 안네 자매의 키를 날짜와 함께 표시해둔 눈금들이 남아 있다. 그 희미한 눈금들은 그들이 버틴 날들에 대한 기록이자 희망의 바로미터였으리라. 창밖의 밤나무가 자라는 동안 어두운 방 안에서도 아이들은 자랐을 것이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죽음을 향해. (127쪽)

 

 

 

 

- 내 삶을 더욱 강인하게 단련할 필요성

- 맹목적인 분노는 소용이 없다는 사실

- 사람과 만나는 것을 줄일 것

- 작업과 고독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

-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지켜나갈 것

- 낭비를 줄일 것

- 시에 대해 더욱 치열해지자

 

 

미국 시인 에이드리안 리치의 일기의 한 대목입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자신의 생활과 내면을 다잡으려는 치열한 노력이 느껴지는 구절이라, 작가가 다시 적어서 책상 위에 붙여두었다고 합니다. 소모적인 일과 약속을 최대한 줄이고 작업과 고독의 시간을 많이 가지자고 했습니다.

 

고흐와 카프카, 안네의 방을 묘사한 구절을 옮겨 위에 썼습니다만, 그들도 아주 심플한 공간에서 고독의 시간과 싸우며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환경보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글도 그림도 더 치열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견디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해야 될 일만 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나를 갉아먹고 있는 일들을 멀리 하고,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해야 합니다. 리치도 나희덕도 더 치열해지자고 합니다. 시인들도 그럴진대 나는 더욱 그래야합니다. 

 

나태해진 나의 영혼에게 던지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