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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야기

이러다 곧 온다 : 실버 센류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by Keaton Kim 2024. 9. 3.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

 

야마모토 류소. 남성. 지바현. 일흔세 살. 무직 (p.9)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요시무라 아키히로. 남성. 사이타마현. 일흔세 살. 무직 (p.17)

 

 

자명종 

울리려면 멀었나

일어나서 기다린다

 

야마다 히로마사. 남성. 가나가와현. 일흔한 살. 경영 컨설턴트 (p.19)

 

 

연명 치료

필요없다 써놓고

매일 병원 다닌다

 

우루이치 다카미쓰. 남성. 미야기현. 일흔 살. 무직 (p.20)

 

 

"연세가 많으셔서요"

그게 병명이냐 

시골 의사여

 

마쓰우라 히로시. 남성. 지바현. 여든세 살. 무직 (p.50)

 

 

손주 목소리

부부 둘이서

수화기에 뺨을 맞댄다

 

나카쿠보 시로. 남성. 히로시마현. 일흔여섯 살. 무직 (p.72)

 

 

무농약에 

집착하면서

내복약에 절어 산다

 

나카타니 고키치. 남성. 오사카부. 예순다섯 살 (p.74)

 

 

오랜만에 보는 얼굴

고인이 연 이어 주는

장례식장

 

나카야마 구니오. 남성. 히로시마현. 예순아홉 살. 무직 (p.83)

 

 

정년이다

지금부터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지

 

오기와라 미쓰오. 남성. 군마현. 쉰두 살 (p.94)

 

 

늙은 두 사람

수금원에게 

차를 대접한다

 

기무라 도시요. 여성. 이바라키현. 일흔두 살 (p.101)

 

 

"요전엔 말이야"

이렇게 운을 뗀

오십 년 전 이야기

 

오모리 지호. 여성. 오사카부. 마흔세 살. 주부 (p.118)

 

 

 

 

 

낙선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는데, 교통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뜨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고를 받은 첫 날 상순이와 치환이가 온다고 해서 상가에 갔습니다. 둘째 날은 용석이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함께 갔습니다. 발인에는 관 들 사람이 부족할 것 같아 또 갔더랬습니다. 상가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만나서 반가왔습니다. 지금은 어디 사는지, 하는 일은 잘 되는지, 자식들은 얼마나 컸는지, 뭐 그런 대화를 나누고, 학교 다닐 때의 소소한 기억들을 나누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그 때의 시절로 금방 돌아갑니다. 다 커버렸는데 아직도 자기가 강아지인줄 알고 주인에게 안기는 커다란 리트리버처럼 우리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십대와 이십대, 많이 봐줘서 삼십대에 우리는 머물러 있는데, 이제는 부모를 떠나보내는 상가집에서 만나 안부를 묻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긴 우리의 2세가 이제 어른이 다 되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환갑을 맞이한 아이돌을 보고 늙음을 깨닫는다고 했습니다. 지나간 세월이 하도 쏜살같아 "30년이 어데 갔노?" 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용석이가 "그체? 재미나게 즐겁게 살자. 뭐도 많이 하고. 인자 얼마 안 남았다." 합니다. 

 

가슴이 뛰어서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정맥이었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 듯, 이 책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내공과 한탄이 담긴 짧은 시입니다. 일본의 실버타운협회에서 센류라는 일본 정형시의 공모전을 해마다 열고 있고, 많은 응모작 중에서 걸작으로 뽑힌 여든여덟 수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요전에는 말이야 하고 오십년 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시를 옮겨 적었습니다만, 우리도 예전에는 하면서 삼십 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서 웃고 떠듭니다. 벌써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용석이가 이 책을 선물해줬습니다. 책을 받는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부지런히 즐겁게 살아야지요. 진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곧 옵니다. 일어나서 자명종 울기를 기다리는 그런 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