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좇는 삶인가 6펜스를 좇는 삶인가 :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아니 그럼, 여자 때문에 부인을 떠난 게 아니란 말입니까?"
"당연히 아니오.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소"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아니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당신 나이에 시작해서 잘될 것 같습니까? 그림은 다들 십칠팔 세에 시작하지 않습니까?"
"열여덟 살 때보다는 더 빨리 배울 수 있소"
"어째서 그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려야 해요"
"하기야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 훌륭한 화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나중에 가서 일을 그르쳤다고 후회하면 큰 낭패가 아닙니까?"
"난 그려야 해요"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p.66~69)
그림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강했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곁에 있던 부인과 아이들, 그리고 증권사의 잘 나가는 샐러리맨이라는 안락한 직장을 모두 버리고 가출을 합니다. 이후에 그는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그림에만 몰두합니다.
꿈을 좇는 삶을 살 것인가, 현실을 좇는 삶을 살 것인가.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있구요, 그런 것보단 자신만의 꿈에 더 비중을 두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 꿈을 좇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이도 많구요. 위의 스트릭랜드처럼 그 꿈이 너무 자기가 가진 모든 것과 바꿀만큼 강렬해서 거기에 온 몸을 맡기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이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이며 선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서도 아깝지 않을, 온 몸을 던질만한 열정을 모두 쏟을 수 있는 꿈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꿈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면에서는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보편적이고도 상식적인 기준, 그러니까 지금의 현실을 지탱하는 물질적 관점에서 보자면, 주인공은 그야말로 바보, 미친 넘, 염치 없는 넘, 주위 사람들의 생각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무지 이기적인 넘으로 보여집니다. 17년 동안이나 같이 살았던 가족을 서슴없이 버리고, 굶주리고 병에 걸렸을 때 도와주었던 친구의 아내랑 사랑을 나누고, 욕심을 채운 후 여자를 버리고, 그 충격으로 여자가 자살을 해도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개쓰레기같은 넘입니다. 이 소설은 폴 고갱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 실제 고갱은 소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보다 더 개차반이었다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보는 비정상적인 것만큼,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그림을 그리는 것에 열중합니다. 마치 악마에 홀린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릅니다. 그 모습은 비장하고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고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한 평가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오직 창작에 대한 욕구만이 자신이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폴 고갱 - 자화상, 1893-4
사진 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fabiano&folder=16&list_id=13576859
스트릭랜드를 비열한 이기주의자, 무책임한 개인적 욕망의 노예... 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래도 현실과 타협하며 개인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대로 예술혼의 절정, 그림을 그리겠다는 원초적이며 순수한 욕구에 대한 열정의 화신... 으로 보는 이는 마음에 커다란 꿈을 담고 사는 사람일 확률이 높을 겁니다. 어떻게 읽히든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개인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속적이라 손가락질 할 수도, 몽상가라 비웃을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어떤 분야, 특히나 예술과 관련된 쪽은 지난한 가난과 고독을 겪은 후에야 완성된 작품을 만든 이가 대부분입니다. 자신만의 정신 세계가 너무도 높고 독창적이어서 다른 이와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진 않더라도, 현실과 꿈 이 두 가지를 모두 좇기는 진정으로 어려울까요? 꿈을 이룰려면 무책임한 이기주의자까지 되어야 하는가요? 스트릭랜드는 가족을 버리지 않고 화가의 꿈을 이룰 수는 없었을까요?
폴 고갱 - 망고 꽃을 든 타히티 여인들 1899
사진 출처 : http://m.blog.daum.net/kyoung-miso/1711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 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이 은화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p.310 작품 해설 중에서)
현실은 <달>을 동경하며 <6펜스>의 삶을 사는 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모두가 <달>을 향해 달려갈 수도 없으며, <6펜스>의 삶이 있어야 그 <달>이라는 것도 가치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6펜스>의 삶을 사는 이들로 인해 굴러갑니다. 그리고 몇몇은 6펜스에서 벗어나 달을 향해 뛰어가 보지만, 닿지 못해 돌아옵니다. 실패했지만 다시 6펜스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도 합니다. 달에 닿았는지 보는 이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이 압니다.
스트릭랜드는 완벽하게 6펜스에서 탈출해서 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스트릭랜드의 삶에 동경하고 공감하고 또 그를 사랑하기도 합니다. 나도 그를 동경한다. 아내에게서 탈출하고, 친구의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타히티에서도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여인을 만나 진정 사랑했다. 아~~ 스트릭랜드!!! 이런 사람들은 열정과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이 비록 시궁창일지라도 달빛에 이끌리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도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어떤가요? 그걸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만한 달을 찾았나요? 그것을 하기 위한 내 개인의 의지는 얼마나 강한가요? 그것을 위해 내가 가진 6펜스을 희생할 각오는 있나요? 세간의 비난에 대해 무시하거나 맞설 용기는 있나요?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얼마나 많은 끈기와 집중력이 필요할까요? 감당할 수 있나요?
스트릭랜드의 삶에 공감하기도 뭣하고 안하기도 뭣한 어정쩡한 중년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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