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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아프가니스탄의 슬픔과 희망 :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

by Keaton Kim 2015. 11. 10.

 

  

아프가니스탄의 슬픔과 희망 :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 

 

 

 

 

 

 

 

 

아래쪽의 바미안 계곡에는 풍요로운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바비는 논밭에 심긴 것들이 푸른 겨울밀과 자주개자리, 감자들이라고 했다. 논밭의 경계에는 포플러나무들이 심겨 있었고, 논밭 사이로 시내와 용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자그맣게 보이는 여성들이 둑 위에 쪼그리고 앉아 빨래를 하고 있었다. 바비는 경사면을 수놓고 있는 벼와 보리를 가리켰다. 가을이었다. 라일라는 밝은 웃옷을 입은 사람들이 흙집의 지붕 위에 추수한 것을 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내로 통하는 중심도로에도 포플러나무가 심겨 있었다.작은 가게와 찻집, 이발관들이 길 양쪽에 있었다. 마을과 강, 시내 저 너머에 있는 살풍경하고 뿌연 갈색 언덕들이 라일라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 너머로, 아니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것 너머로, 봉우리에 흰 눈이 더핀 힌두쿠시 산도 보였다. 그 모든 것 중에서도 하늘은 한 점 티끌도 없는 완벽한 푸른색이었다.

 

 

바비가 말했다. "이곳을 떠올릴 때면 나는 늘 정적과 평화로움을 떠올린다. 나는 너희들이 그것을 체험하기를 바랐다. 나는 너희들이 조국의 유산을 보고 풍요로운 과거에 대해 알기를 바랐다. 내가 뭔가를 너희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면 이것이다. 어떤 것들은 책에서 배우지. 그러나 직접 보고 느껴야 하는 것들도 있다. - P 201

 

 

 

책의 주인공 라일라가 아버지 바비의 손을 잡고 사랑스런 연인 타리크와 함께 바미안 석불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정경을 묘사한 대목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나오는,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보기 힘든 불교 유적인 이 석불은 1500년이 넘게 그 자리에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꿋꿋한 세월을 지켜왔습니다.

 

 

 

2001년 3월, 아프가니스탄 전 지역에서 몰려든 탈레반들이 수도 카불 북쪽으로 백여킬로미터 떨어진 이 곳으로 모여 듭니다. 높이 53m의 거대 석불인 파파붓다에 탱크를 쏩니다. 생각보다 석불은 잘 안부서집니다. 옆의 좀 작은 석불 마마붓다로 갑니다. 이번에는 폭탄을 설치합니다. 그렇게 폭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리곤 다시 파파붓다로 가서, 불상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폭파를 합니다. 비바람을 막아주던 옴푹한 구멍만 남기고 두기의 바미안 석불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석불의 폭파장면

 

 

불상은 사라지고 이 불상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한숨만이 남아있다.

 

 

석불이 파괴되기 전후의 사진.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 책의 제목과는 반대로 책의 줄거리는 아프간 여성의 결코 찬란하지 않은 일생을 보여 줍니다. 주인공은 마리암(1959년생)과 라일라(1978년생)라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두여인입니다. 그러나 자라게 되면서 이 두여인의 운명은 평범하지 못합니다. 한 여인은 여자를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잘못된 관습으로, 또 한 여인은 나름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전쟁으로 가족 모두를 잃고, 비참한 삶의 나락으로 빠집니다.

 

 

 

전쟁으로, 그리고 잘못된 관습으로 두 여인은 절망과 고통의 시간을 살아냅니다. 가난과 차별과 멸시와 죽음의 공포가 언제나 같이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보석같은 희망을 발견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 연대, 희생이 어우러져서 사회를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나갑니다.

 

 

 

책을 읽기 전에 아프간에 대해 아는 것은 겨우 바미안 석불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아프간의 어떤 별종들이 그 석불을 망가뜨렸다는 사실 정도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프가니스탄 지도를 찾아봅니다. 카불이 어디쪽에 있는지, 주인공 마리암의 고향인 헤라트는 어디인지, 폭파로 인해 더 유명해진 바미안 석불이 있는 힌두쿠시 산맥도 찾아봅니다.

 

 

 

그리고 주인공 마리암과 라일라가 살았던 아프간의 현대사도 한번 검색해봅니다. 소련의 침공도 찾아봅니다. 탈레반이라는게 어떤 녀석들인지도 알아봅니다. 요즘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더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IS에게도 다시 눈이 갑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서이자 안내서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존중하지 못하는 문화는 폭력이 되어버립니다. 저 위의 찬란한 유적 바미안 석불을 없애버린 탈레반도 이슬람 외의 모든 종교는 우상숭배라는 커다란 착각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아리따운 두 여인(제가 보기에는)에게 학대와 멸시를 가하는 남편 라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전쟁으로 얼룩진 땅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두 여인의 이야기지만, 저에게는 아프가니스탄 역사서이자, 안내서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누구나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아프간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는 매우 훌륭하게 전달되었습니다.

 

 

 

도시의 지붕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달들이 반짝이고,

벽 뒤에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숨어 있다.

 

 

 

17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가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카불>에 나오는 시의 한 대목입니다. 저자는 이 시에는 모티브를 따서 제목을 지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었다고,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좀 가진다고 해서 그들의 일상이 나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이 조금씩 모여 같은 방향으로 힘이 모아진다면,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숨어있는 아프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