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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내가 방황할 때마다 역사책을 읽는 이유 : 최재성 <역사의 쓸모>

by Keaton Kim 2021. 6. 30.

 

이 책 '협상의 달인' 편에 서희가 나옵니다. 거란 장군 소손녕의 관심은 고려와의 전쟁이 아니라 송나라 정벌에 있고, 송나라를 치러 갔을 때 후방에서 고려가 자신들을 공격할까봐 우려했습니다. 그걸 파악한 서희는 여진이 다스리고 있는 강동 6주를 주면 거란이랑 친하게 지낼거라고 제안하죠. 이 제안에 소손녕도 아주 만족해 했습니다. 서로 상대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서로가 원하는 걸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중3 아들놈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강아, 서희라고 아나?

알죠. 고려시대. 서희. 담판 외교. 학교에서 배웠어요.

 

오오~~ 그래? 서희가 머했는데?

강동 6주를 달라고 했잖아요.

 

누구한테?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소손녕한테 가 가지고 "강동 6주를 주시오!" 하니까 소손녕이 배짱에 쫄아서 줬잖아요.

 

배...배짱에 쫄아서?

소손녕이 그거 주면서 송나라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 캤는데, 고려가 받는 거는 받고, 나중에 거란 뒤통수를 쳐 가지고 거란이 빡쳐서 또 쳐들어왔잖아요.

 

아, 그런 거야?

그래서, 거 뭐시냐, 맞다 강감찬, 강감찬 장군이 거란을 무리쳤잖아요. 귀주대첩인가?

 

그게, 고려가 받을 거는 다 받고, 약속을 안 지켜서 거란이 빡쳐서 쳐들어 온 거라고?

네. 설민석이가 얘기해 줬어요.

 

크~~ 그렇습니다. 나보다 설민석 선생이 먼저네요. 조금 분하지만, 그래도 아들 녀석이 유투브의 설선생 덕에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요.

 

 

 

 

# 갑신정변

 

우리 역사상 희망을 향해 가장 저돌적으로 달려간 사람으로 저자는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개화파를 꼽았습니다. 그들은 상류층 집안 자제들이었는데 양반 상인 차별 없이 다 같은 사람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놓았습니다. 저도 저자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비록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일본의 힘을 빌리려고 해서 실패한 혁명이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바와 꿈꾸었던 세상, 그리고 당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점 등은 결코 나무랄 수 없는 부분입니다. (p.42 인용)

 

# 몽골에게 독립국을 요구하다

 

몽골은 1231년에 처음 고려에 쳐들어왔습니다. 고려는 무려 40년 넘게 버팁니다. 몽골 장군은 "내가 여러 나라를 공격해봤지만 고려 같은 나라는 첨 봤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댑니다. 여튼 항복을 하게 되는데, 고려의 태자는 쿠빌라이에게 당당히 독립국의 지위를 요구합니다. 몽골도 고려를 존중해서 "그러마." 합니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막내딸을 태자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이 태자가 고려 원종입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그러면서 내가 얻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얻어낸 것입니다. (p.130 인용)

 

# 병신 서인

 

임진왜란 이후 북쪽에서는 우르하치의 여진족이 엄청나게 힘을 키웠습니다.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세운 바로 '후금'입니다. 하지만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앞세워 정권을 잡은 조선 서인 정권은 후금을 완전 똥으로 봅니다. 오로지 '친명배금'이었습니다. 오랑캐라고 깔본 거죠. 적어도 쿠데타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세력이라면 이 정도 정세 파악은 해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결국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인조는 그들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고구두례'를 시전하게 됩니다. (p.153 인용)

 

# 김육의 대동법

 

대동법은 쌀로 세금을 내는 제도입니다. 공납, 그러니까 동네의 특산물을 바치는 대신에 쌀로 내는 거죠. 무엇보다 대동법이 혁명적이었던 토지에 부과된 세금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많이, 서민들은 작게 내는 세금이라는 거죠. 이를 실행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 김육이라고 합니다. 김육이 하자고 하면 기득권에서는 당연히 반대를 했겠죠. 하지만 김육은 계속 왕에게 건의합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70에 대동법이 시행됩니다. 그 때 인터뷰를 했는데 김육은 "백성들이 세금이 적게 내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다!"라고 했댑니다. 지금 우리도 부유세를 걷어야 합니다. 지금의 생산 수단인 돈을 가진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세금을 내는 것이 공평합니다. 기득권이 아무리 지랄을 해도 말이죠. (p.181 인용)

 

# 팔마비

 

고려시대엔 공무원 임기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으면 전별금을 받았댑니다. 무려 그랜저 8대를요. 당시 말 한 필이 지금 승용차 한 대 값이라고 하네요. 사또가 다른 곳으로 갈 때 말 여덟 필을 받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전별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너무 힘들었다는군요. 근데 최석이라는 사또가 순천에서 임기를 마치자 순천 사람들이 말 여덟 필을 준비했고 최석은 짐을 싣고 개경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말 아홉 필을 순천으로 다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새끼까지 합쳐서요. 그래서 순천에 가면 팔마비라는 게 있댑니다. 순천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청렴의 도시를 불렸다는군요. (p.237 인용)

 

# 예송논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첨에는 흥미진진하다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점 재미가 없었는데, 바로 '예송논쟁'만 주구장창 나와서 그랬습니다. 근데, 이 책에서는 왜 그게 그리 중요했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아들이지요. 큰 아들은 그 유명한 '소현세자'입니다. 왕이 되었더라면 세종, 정조에 버금갈 인물이었습니다. 인조의 갈굼에 일찍 죽죠. 둘째 아들 봉림대군이 왕이 되는데 효종입니다.

 

효종이 죽는데 효종의 계모, 즉 인조의 젊은 왕비였던 자의대비가 살아있었습니다. 자의대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이 논쟁이 되었습니다. 서인은 "효종이 차남이니 1년만 입으면 된다" 였고, 남인은 "무슨 소리! 왕이니까 장남에 준해서 3년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게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근데 이게 따져보면 정통성의 문제였습니다. 왕을 제대로 인정하느냐 안하느냐 문제였죠.

 

저자는 "지금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논쟁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전쟁이 끝나고 백성들은 정말 피폐한 삶을 살았는데, 나라의 높은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기 싸움을 한 거죠. 지금 우리가 기를 쓰고 싸우고 있는 쟁점들도 그런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썼습니다. 이 부분이 제일 와닿았습니다. 지금의 나쁜 기득권 세력 즉, 보수 야당, 검찰, 언론, 재벌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를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p.260 인용)

 

# 무르만스크의 전보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 위원부에 의문의 전보가 한 통 옵니다.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 온 전보인데요, 무르만스크는 지금은 핀란드 옆에 붙어 있는 러시아 땅으로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북단의 땅입니다. 한반도를 떠나 무르만스크까지 간 한인노동자들이 보낸 전보였습니다. 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임시정부 파리 위원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30여 명을 구출해 프랑스 파리 인근의 쉬프 지역에 터를 잡게 해줍니다. 이들의 국적은 '코리아'였습니다. 몰랐던 역사적 사실, 더우기 이렇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집니다. (p.276 인용)

 

 

사진 출처 : EBS 지식의 기쁨

 

 

책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번 정도는 들어본 역사의 장면들입니다. 저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두고 저자가 해석하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광장에 태극기를 들고 나오시는 어르신을 보면서 "독재로 돌아가자는 거야?"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의 삶을 먼저 돌아보자는 저자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저는 지금 젊은이들의 정치 성향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일은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헤아려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역사를 공부함으로서 서로의 시대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역사책이 재미있고 즐겨 읽습니다.

 

저자의 강의를 듣을 수 없는 가난한 학생, 시골 지역의 학생을 위해서 무료로 인터넷 강의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강의에 정치색이 입히고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처럼 되어 강의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립니다. 그 때 저자의 온라인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자신을 지지해줍니다. 인터넷 강의가 사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이 때 말끔히 해소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책 말미에 나옵니다.

 

그런 저자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동영상도 무지 많고, 또 꽤나 낯이 익습니다. 역사는 '최태성!' 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선생님이네요. 저만 몰랐습니다ㅋ. 호기심이 생겨 <군함도 역사 강의>라는 짧은 유투브도 봤습니다. 무료 영상으로 수험생들에게 진정한 '선생님'으로 추앙받는다고 합니다. 전 이 책으로 이미 이 냥반 팬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