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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당신과 함께라면 죽을 수도 있다 :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

by Keaton Kim 2016. 12. 11.

 

 

 

당신과 함께라면 죽을 수도 있다 :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

 

 

 

당신과 함께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일은 조촐한 다과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어느 순간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죠. 문학상 축하 모임에 참석한 할데겐가의 사모님 마리안네는 상류 계층의 가식적이고 의례적인 수다와 만남을 못내 지루해합니다. 문학상을 수상한 베르톨트의 연설을 듣는 동안 그가 점차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왠지 마음에 든다고나 할까.

 

 

 

순간이긴 합니다만, 서로 눈길을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그가 곧장 마리안네에게로 걸어갑니다. 두 사람은 마주 봅니다. 분명 오래 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겐 그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집니다. 일단 스쳐가고 나면 계속 그리워하는 그런 순간 말이죠. 베르톨트가 말합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단언컨대, 이 말은 둘이 나눈 첫 마디이며 그 한마디로 마리안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 - 심지어 어린 아들마저도 - 을 버리고 베르톨트를 따라나서게 됩니다. 처음 나눈 단 한 마디의 대사로 자신의 영혼마저 모두 던져버리게 하는 운명같은 사랑! 아~~ 이게 가능할까요?

 

 

 

곱씹어보면, 둘은 찰나이지만 같은 부류의 사람임을 서로 느꼈습니다. 문학상 축하 파티라는 공간에 억지로 끌려나온, 그들이 머문 시간과 공간이 전혀 의미가 없는, 오직 둘 만의 시선이 온 세상의 전부가 되는, 순간이 영원이 되고 영원이 순간이 되는 아득함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늦어도 11월에는> 이란 이 멋진 제목의 소설은 전후 독일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며 세계적인 소설가라고 칭송받는 한스 에리히 노삭이라는 분이 1955년에 쓴 작품입니다.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에서 자기 상실의 아픔을 겪는 여인 마리안네를 중심으로, 기존의 모든 사회적 질서와 독선을 부정하고 새로운 자아 실현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뜨거운 정열로 옹호하는, 전후 독일문학의 최고작'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소설입니다.

 

 

 

늦어도 11월에는..... 우리 함께 떠나요.

 

 

 

오직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마리안네.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아주 잠깐 동안요. 그리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보류합니다. 잠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11월의 어느 날입니다.

 

 

 

늦어도 11월에는 희곡을 완성하고,

늦어도 11월에는 개막 공연을 하고,

늦어도 11월에는 폭스바겐도 한 대 사고,

늦어도 11월에는 그대와 함께 여행을 떠날거야.

 

 

 

그리고 11월, 하루 종일 무덥다가 우박이 쏟아지는 밤에, 베르톨트는 거짓말같이 마리안네를 찾아옵니다. 그게 운명이라는 듯, 두 사람은 낡은 폭스바겐을 타고,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은 채, 그들만의 세계로 떠납니다.

 

 

 

베르톨트가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었다. 처음에는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무릎위를 스쳐가는 그의 휘파람은, 전에 내가 가르쳐준 그 자장가였다. 그는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휘파람 소리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해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의 휘파람 소리를, 나의 자장가 소리를 함께 듣고 있었다. 행복했다. (p.376)

 

 

 

기적과 같은 운명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다시 올 그런 행운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런 행운이 왔을 때 자신이 향유해 온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사랑에 몸을 던질 그런 용기가 있나요?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완성은 오직 죽음 뿐일까요? 반세기전 독일 거장의 이런 질문에 당신은 어떤 해답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늦어도 11월에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P.S. 단상

 

 

1.

연애소설도 이쯤 되면 예술이라고 번역자가 말했지만, 지금은 더 극적인 연애소설이 널렸다. 1955년 독일에서는 이 정도가 예술일지는 몰라도 2016년 대한민국에서는 아니다.

 

 

2.

불륜의 결말은 언제나 불행인가? 여태 읽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불륜이 잘 된 적은 한번도 못봤다. 엊그제 본 전도연과 공유의 '남과여'도 그랬다. 모든 걸 버리고 갈 정도의 사랑이면 영원히 행복해야 되는 게 아닌가!

 

 

3.

나는 운명적인 사랑, 그 후가 궁금하다. 코난과 라나가 결혼한 후의 일상이 궁금하다는 말이다. 그들도 애가 둘 셋 생기고, 결혼을 한지 십여년이 지나면, "니가 옛날에는 안그라더마, 내한테 우째 이라노?" 라는 말을 달고 살지 않을까?

 

 

4.

사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는 것 보다 그 운명적인 사랑을 일상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어렵다. 몸과 영혼을 바친 위대한 사랑은, 일상이라는 지저분하고 따분하고 지루하고 때론 까칠한 녀석에게 점점 자리를 내어준다. 운명적인 사랑을 조금씩 떼어 일상에서 오랫동안 그것을 향유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