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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내 존재의 무게는 얼마인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개락당 대표 2017. 3. 26.

 

 

 

내 존재의 무게는 얼마인가?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영원회귀

 

다음 생을 믿는가? 지금의 힘든 삶을 견디면 다음 생은 좀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라 믿는가? 니체의 영원회귀는 다음 생도 이번 생과 똑같다는 사상이다. 그것도 무한히 반복되는.... 지금 사는 삶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니체는 "지금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고 말했다. 지금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 영원히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간에 충실하라! Amor Fati!!

 

 

 

# 키치 Kitsch

 

싸게 만들다 라는 독일어 동사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저속한 상품이라는 뜻. 겉은 그럴 듯 하지만 속은 알맹이가 없는 것. "키치는 간접 경험이며 모방된 감각이다. 키치는 양식에 따라 변하지만 본질은 똑같다." 라고 그린버그라는 미술평론가가 말했다. 오늘날은 종종 진지하고 고상한 취향에 반하는 이단적인 감각이나 태도를 칭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의 개념은 현실의 이면을 부정하고 이상이나 감동적 이미지만을 신봉하는 것으로 나온다. 토론 수업의 선생님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리하여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묘하게 공감이 간다.

 

 

 

# 프라하의 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 1968년 알렉산데르 두브체코가 집권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행동강령을 발표하면서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보장했다. 프라하에도 봄이 왔다. 그러나 그 봄은 아주 잠깐. 소련은 이 민주와 운동이 영 거슬렸다. 잠깐 방심하면 공산권 전체에 퍼질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신속하고도 강경하게 이 나라를 무력으로 접수했다. 그 다음은 충공깽. 이 억압과 공포의 통치는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막을 내리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 정권도 완전히 몰락한다.

 

 

 

# 우연과 필연

 

우연은 가볍고 필연은 무겁다. 우연은 겹쳐지고 겹쳐져 필연이 된다. 필연적인 것만이 진중한 것이고, 묵직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연을 믿는 사람의 삶은 무겁고 우연을 믿는 사람의 삶은 그 자체도 가볍다... 고 말할 수 있나? 테레자와 토마시의 만남, 사비나와 프란츠의 만남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인간의 삶은 영원회귀가 아니다. 오직 한번 사는 삶이다. 잘잘못을 가릴 수 없는 선택이 모여 우연이 된다. 나의 선택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

 

 

 

# Es Muss Sein

 

Muss Es Sein? 그래야만 할까?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 이국에서의 낯선 삶을 거부하고 시궁창과 다름없는 일상의 고향으로 떠나간 테레자. 혼자 남아 낯선 가벼움을 쫓을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무거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녀를 따라갈 것인가 고민하던 토마시가 결정적으로 영감을 받은 명제다. 우리의 삶에서 이 명제는 어느 정도의 크기로 존재하는가?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으므로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주어지지 않는다. (p.357)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저마다의 삶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그 무게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읊조리는 유행가가 있는가 하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의 백사장은 삶은 고통이라고 속삭인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만 그렇게 느낄까? 백여년전의 격동의 대한제국을 살았던 사람들도 그랬을테고, 이백년도 훨씬 전의 프랑스 민중들도 그랬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을 사는 체코인들도 물론이다.

 

 

 

소설의 배경은 짧았던 '프라하의 봄'이 끝난 그 이후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운명이 크게 요동치고 이 흐름에 개인의 사소한 역사는 쉽게 매몰되고 흔들리고 묻히기 쉬운 시대였다. 뛰어난 외과의사이자 여자 관계는 한 없이 가벼운 토마시, 상처받은 영혼을 진실한 사랑으로 극복하려 한 테레자, 흔들리는 시대에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비나, 그런 사비나의 모습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홀로 서기를 시도하는 프란츠. 성격도 존재의 무게도 다른 네명의 주인공이 저마다 서로 다른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들은 얼마나 가볍고 또 얼마나 무거울까?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서는 깃털처럼 가벼운 토마시는,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부분에서는 둔중하다. 자유를 갈방하는 사비나 역시 인간 관계는 가벼우나 그녀의 신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볍지 않은 삶의 여정을 걸어온 테레자는 질식할 듯한 사랑의 무게로 토마시에게 다가서나 삶의 방식은 제비처럼 가벼우며, 사비나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낀 프란츠는 삶의 무게가 한 없이 가벼움을 깨닫는다.

 

 

 

누구의 삶이 가볍고 누구의 삶이 무거운가? 그리고 당신의 존재의 무게는 어느 정도인가? 앞서 삶은 고통이고 무릎이 꺾일 만큼의 무게라고 했지만, 밀란 쿤데라는 다르게 보았다. 한 번 사는 삶은 그것으로 영원이 끝이며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 개인의 삶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 여기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은 않는 작가 자신의 가능성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소설속의 주인공, 아니 우리 모두는 가볍고도 무겁다.

 

 

 

결국 생은 가벼움과 묵직함의 교차점이다. 긍정의 가벼움과 부정의 무거움, 우연의 가벼움과 필연의 무거움이 뒤섞인 서사다. 얽매임과 자유가 엉키고 설켜 우리의 삶을 이룬다. 이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이 선택은 옳고 그른지 알 길이 없다.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존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