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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외국)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건..... :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by 개락당 대표 2017. 6. 3.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건..... :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원하는 게 뭐야, 잭?"

"난 이 연애를 할 거야."

 

 

"이혼을 원하는 거네."

"아니, 난 모든 게 그대로이길 원해. 속이지 않고."

 

 

"이해 안 돼."

"아니, 이해할 거야. 당신이 언젠가 말했잖아. 오래 함께 지낸 부부는 남매 같은 사이를 염원할 거라고. 우린 이룬거야, 피오나. 난 당신 오빠가 된 거야. 포근하고 다정하잖아. 난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대단하고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

 

 

"미쳤군"

"열락, 흥분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경험. 기억은 해? 마지막으로 한 번 시도해보고 싶다고. 당신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아니, 당신도 원할지 모르지."

 

 

"그러면 우리 관계는 끝이야"

"협박인가?"

"엄연한 약속이야." (p12~13)

 

 

 

잭 : 당신은 고고하고 유능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당신과 헤어지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의 욕구를 포기할 순 없어. 너무 오래 참고 살았어. 이젠 그렇게 살기 싫어. 당신은 판사로선 우수하지만 그 방면으론 거의 빵점이야.

 

 

피오나 : 기어이 그 여자와 한번 자보겠다는 거지. 여태껏 내가 겨우 사람같이 만들어 놓았더만. 저런 인간을 믿고 내가 여태 살아왔단 말이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이럴 때, 내가 약하고 쓸쓸할 때 떠나야겠니? 

 

 

 

 

 

 

"그럼 수혈 거부는?"

"그게 왜요?"

 

 

"부모님은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하시니?"

"말할 게 별로 없어요. 우린 뭐가 옳은지 아니까."

 

 

"네 아버니가 종교적인 논점을 몇 가지 설명하셨는데, 난 네가 직접 하는 말을 듣고 싶구나. 수혈을 안 받으려는 이유가 정확히 뭐지?"

"옳지 않기 때문이에요."

 

 

"계속해봐"

"그리고 하느님께서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고요."

 

 

"왜 그게 옳지 않지?"

"다른 옳지 않은 것들은 왜 그런가요? 우리가 그렇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죠. 고문, 살인, 도둑질. 나쁜 사람을 고문해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해도 우린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아요. 우리가 아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이에요."

 

 

"이것만 확인하자, 애덤. 너를 위한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인지,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야. 내가 만일 병원 쪽에 네 의사와 상관없이 수혈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마이 레이디가 간섭이 심한 참견쟁이라고 생각하겠죠." (p154~157)

 

 

 

애덤 : 그깟 죽음, 하나도 안 무서워요. 나는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순교자로 남겠죠.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을 부모님도, 장로님도, 교회의 모든 이들이 자랑스러워 해요. 하지만.... 살고 싶어요.

 

 

피오나 : 애덤. 이 사랑스럽고 아름아운 소년이여.... 17살이라는 나이를 뛰어넘는 통찰력도 가지고 있구나. 나는 너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한단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의 복지야. 너의 열정과 사랑을 마음껏 펼칠 시간이 네게 필요하단다.

 

 

 

 

 

 

"무슨 일이 있군."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어."

 

 

"다들 일어섰을 때? 하긴 나도 완전히 쓰러질 뻔했다니까."

"마지막 곡 말이야."

 

 

"말러 말이지."

"<버드나무 정원>"

 

 

"뭐가 어떻게?"

"어떤 기억, 지난 여름의."

 

 

"그래?"

"한 청년이 그 곡을 바이올린으로 들려줬어. 막 배우는 단계였거든. 병원이었고. 난 거기 맞춰서 노래를 불렀어. 둘 다 꽤나 시끄러운 소리였을 거야. 그리고 그 애가 다시 연주하자고 했는데, 난 그냥 나와야 했어."

 

 

"다시 시작해봐. 그게 누구야?"

"아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청년."

 

 

"그래서?"

"심리를 미루고 병실로 가서 그 애를 만났어. 기억날 거야. 여호와의 증인. 중병인데 치료를 거부했던. 신문에 나왔잖아."

 

 

"기억나는 것 같아."

"내가 병원에 치료 허가를 내줬고 아이는 회복했어. 그 판결이....... 게 아이한테 영향을 미쳤어. 내 생각에..... 내 생각에 나한테 어떤 강렬한 감정을 품었던 것 같아"

 

 

"계속해봐."

"순회 나갔을 때 그 애가 뉴캐슬까지 따라왔어. 그리고 난..... 그 애가 빗속을 뚫고 날 찾아왔고..... 정말 멍청한 짓을 해 버렸어. 숙소에서. 내가 어떻게 됐었는지..... 그 애한테 키스했어. 키스했다고." (p281~283)

 

 

 

잭 : .........

 

 

피오나 : 예순 가까이 살아오면서 내가 시도한 모험이라곤 아주 오래전에 뉴캐슬에서의 서투른 흉내의 추억 말고는 없어. 그런 나에게 그 아인 삶의 '의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가왔는데...... 하찮은 명성 따위에 연연해 그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난 그 아이의 삶에, 그 아이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게......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예이츠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p.273)

 

 

 

오랜 경륜을 가진 유능한 판사조차 자기의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 이토록 힘든 일이다. 특히 한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로 영향을 미치는 그런 결정에는 말이다. 그들도 그럴진대 우리같은 범부는 오직 하랴.... 그저 이제서야 눈물을 흘릴 뿐. 그건 그렇고, 책에 나오는 여러 판결문은 곱씹어 볼 만한 문장들이다. 이정미 판사의 판결문이 떠오른다. 그들은 아주 훌륭한 글쓰기 솜씨를 지닌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