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치열한 글쓰기라니....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나의 투쟁>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을 책으로 쓰면 어느 정도의 분량이 될까? 격랑의 시대에서 질풍노도의 시간을 거쳐온 어른들이 흔히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몇 권은 될거야!" 이렇게 말씀하신다. 삶의 굴곡이 많았던 이들만 그럴까? 그저 담담하게 평범한 시간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물과 감동의 스토리가 있다. 그렇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은 한편의 장대한 대하소설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적어 책으로 만든 이는 없다. 삶의 자취를 모두 기억하여 글로 옮기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책으로 냈다 하더라도, 그의 삶이 어느 정도 드라마틱한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의 스토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딱히 궁금하지 않다. 그렇기에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상상력이 덧붙여져야 읽을 맛이 난다.
노르웨이의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일상을 시시콜콜하게 써 내려갔다. 어릴 적부터 현재에 이르는 모든 사물과 사건과 감정을 기억해내어 활자로 옮겼다. 그 결과 600페이지가 넘는 책 6권을 펴냈다. 바로 이 책 <나의 투쟁>이다.
이 책은 낯설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그 지명이 낯설고 등장 인물의 낯설다. 책에 나오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기후와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 그들이 보낸 학창 시절, 파티, 장례식 등 모든 것이 낯설다. 심지어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저자의 사진도 낯설다.
문장은 너무나 간결하여 건조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삶을 화려하게 치장해 줄 모든 형용사나 부사 같은 것 없다. 그저 자신의 생활을 간결하게 또 간결하게 묘사했을 뿐이다. 그저 친구를 사귀고, 여자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아이를 키우고, 청소를 하고,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더듬는다. 드라마틱한 전개 같은 건 없다. 책의 해설에 '소설적 요소가 부재한 소설'이라는 말이 이 책의 특성을 보여준다.
"뭐, 별거 없네. 살면서 이 정도의 경험은 다들 한다구." 라는 느낌의 이 책은, 그럼에도 500만의 인구를 가진 노르웨이에서 50만부가 팔렸으며, 세계 32개국에 번역되어 읽히고 있고, 다수의 저명한 문학상도 받았다. 무엇이 그토록 이슈가 되었을까? 서두에서 자전적 소설은 약간의 상상력이 가미되어야 서사의 형태를 가진다고 했지만, 이 책은 역설적으로 오직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감상만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글에 나타난 삶에 대한 진정성과 솔직함이 그의 문장력과 어우려서 우리의 가슴 한켠을 건드린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와 번역자 손화수
번역자는 크나우스고르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크나우스고르와 만나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소설 <나의 투쟁>이 바로 크나우스고르였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9&nNewsNumb=002392100023
"할 수 있는 일이란 글쓰기밖에 없다"고 한 크나우스고르. 바로 이 글 쓰는 일을 통해 그는 자신을 해부하고 관찰하며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다. 비록 그것이 부끄럽고 아픈 일이라 할지라도. 그의 언어가 너무나 직접적이고 솔직하며, 가끔은 민망할 정도로 상투적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1권 p.671,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자신의 일상과 감정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자세하게 서술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투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글을 쓰면서 그는 무엇을 증명하려 했을까?
저자는 가족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는 어떠한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자라는 모든 감정을 글로서 풀어낼 때만이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Jock Sturges <바다를 등진 소녀>
책의 내용안에 크나우스고르의 책 표지에 사용이 되었다던 사진이다. "Jock Sturges의 작품은 성적인 욕망이나 음란함 보다는 순수한 인간 본연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라고 그의 작품 전시회에 쓰여 있었다.
사진 출처 : https://styler.rbc.ua/rus/zhizn/rossii-trebuyut-srochno-zakryt-vystavku-rabot-1474784616.html
몸서리치도록 지루하고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룬다. 저자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투쟁이라 했다. 그의 글쓰기는 무심한 일상과의 치열한 투쟁이다. 자신의 일상을 관찰하고 느끼면서 그것을 모조리 글로 옮기겠다는 그의 단호한 의지가 돋보인다. 그의 삶이, 그의 글쓰기가,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이 <나의 투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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