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이 혁명적이라고 평가하는 만화 : 시니, 혀노 <죽음에 관하여>
아부지, 여기 죽관 있어요!
응? 그게 뭔데?
<죽음에 관하여> 라는 만환데여, 이거 혁명적인 만화에여.
혁명적인 만화?
네.
뭐가 혁명적인 거야?
그냥, 딱, 혁명적이에요.....
오랜만에 막내와 서점에 들러 만화 코너를 둘러보던 중 아이가 외칩니다. 혁명적인 만화! 혁명적이라는 단어를 알고나 하는 말일까. 여튼, 아이가 그렇게 흥분하는 만화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럼 사까? 네, 사여! 초등학교 6학년이 혁명적이라고 평가하는 만화 <죽음에 관하여>를 샀습니다. 뭐가 그리 혁명적일까 하며 읽었습니다.
"그때보다 좀 더 가볍소"
"당신이 없었으니까 그렇지"
할아버지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저승에 들어가려고 하니 그 동안의 삶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12년 후 할머니가 죽고 저승의 입구에서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12년 동안 할머니를 기다린 것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업고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저승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가슴 한 켠이 짠해 온다.
오리지널 웹툰은 아래를 클릭하면 된다. 잠깐이면 되니 한번 봐보시길 추천드린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703845&no=6&weekday=wed
책은 신과 저승에 온 인간이 만나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확히는 죽어서 저승에 왔거나 죽음을 앞두고 저승을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이 신을 만나서 그 동안 삶에 대해 하소연도 하고 후회도 하고 새 삶에 대한 각오도 하는 내용입니다. 앞에 소개한 에피소드는 1권 4화의 이야기로 뭔가 흐뭇하면서 가슴이 쨘해지는 스토리입니다. 아내를 업어준 적이 언제적인가.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잘 안되는 일인데..... 당장이라도 아내를 업어주고 싶게 만듭니다. 함 업어주까? 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당히 궁금하기도.....
그 밖에도 재미있고 곱씹어봐야 할 에피소드들이 꽤 있습니다. 과로로 의식을 잃은 청년이 신을 만나 삶의 어드바이스를 받아들이는 장면, 화재 현장에서 남겨온 것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죽을 때까지 떨쳐버리지 못하는 소방관 이야기 등. 읽고 나서 그 여운이 한참이나 가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조금 어려워서 두세 번 책을 뒤적이야 이해가 되는 스토리도 있습니다.
막내가 지가 이해한 부분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아빠, 총알에 써 있는 숫자는 17살 쌍둥이를 가르키는 말이에요, 여기에 나온 죽은 사람이 전회에 나온 이 사람이에요, 이 죽은 아기는 낙태해서 그런거에요....
죽음을 소재로 하는 만화를 초등학교 6학년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혁명적'이라는 평가는 이 만화가 아닌 죽음에 관한 여러 사실들에 대한 아이의 어색함과 이해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감각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죠. 부모가 가르쳐 줄 수 없는 부분을 아이는 이런 책으로 스스로 배웁니다. 그나저나 아이가 아빠인 저에게 낙태를 가르쳐줄때는 저도 놀랐습니다. 그걸 다 알고 있단 말이냐. 저 아이의 머리속에 있는 것이 궁금해집니다. 아이는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이미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한 것 같습니다. 아빠인 제가 상상이 안될 정도루요.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재연재를 하는 군요. 이런..... 웹툰으로 시작된 만화라 책보단 역시 웹툰으로 보는 것이 제맛입니다. 웹툰엔 BGM도 흐릅니다. 책에 함께 있던 CD가 그것이었군요. 만화의 슬픔과 쓸쓸함과 여운이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책의 제목은 <죽음에 관하여> 이지만, 결국 죽음에 이른 자가 얘기하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입니다. 웹툰을 읽어보셨나요? 그렇다면.... 자, 그럼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만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광주 이야기 : 김성재 변기현 <망월> (2) | 2018.08.11 |
---|---|
산책,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 : 다니구치 지로 <산책> (0) | 2018.07.13 |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집밥 한 끼 :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0) | 2018.03.10 |
제 자신도 어쩌지 못해서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인간들 : 최규석 <송곳> (0) | 2018.02.15 |
절제와 여백의 작가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 걸작 : 아다치 미츠루 <미유키> (0) | 2017.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