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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형님들의 여행법은 없다 : 최예선 심혜경 손경여 김미경의 언니들의 여행법

by Keaton Kim 2016. 12. 10.

 

 

 

형님들의 여행법은 없다 : 최예선 심혜경 손경여 김미경의 언니들의 여행법

 

 

 

함께 차를 마신다는 것은 그 시간을 공유하는 것 만이 아니다. 같은 향과 온기 속에서 혼곤하게 적셔진 느낌, 함께 목욕을 한 감각적인 공감대가 생긴다. (p.173)

 

 

 

올 여름에 친구 넷이서 인도 여행을 갔더랬습니다. 직장인 갈 수 있는 최대치의 기간인 10일 일정으로 계획을 세우고, 6개월 정도를 준비해서 남부 인도를 돌아보는 여행이었습니다. 일과 가족에서 해방되어 들뜬 기분으로 출발하였지만, 그 기분은 딱 이삼 일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경치도, 이색적인 음식도 40대 중년의 아저씨들에겐 더 이상의 새로운 감동을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낯선 도시와 낯선 사람이 주는 감흥은 아마도 그 사람이 기지고 있는 감수성에 비례하겠지요. 어느듯 그런 것들에 대해 반응하고 누리고 즐기는 감성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돌질하는 그런 감각들말이죠. 일본에서 차만 같이 마셔도 목욕을 같이 한 느낌이 생기는 저자들의 저 공감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요? 저런 신묘한 약은 어디서 파나요? 누가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는데.....

 

 

 

 

 

 

언니들의 여행은 느긋합니다. 느긋하게 삶의 풍경을 관찰합니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일본인의 삶이 담긴 시타마치를 거닙니다. 소박한 집과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디자인을 탐색하고 즐깁니다. 일상적인 순간을 섬세히 들여다보며 삶의 지속성을 재발견합니다. 그러면서 함께 한 이들을 배려할 줄 압니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면서도 타인의 감각을 보듬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관계는 더욱 깊어갑니다.

 

 

 

난쿠루나이사 - 어떻게든 잘 될거야, 괜찮아

 

 

 

형님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느긋함일 것입니다. (のんびり 논비리라고 읽는데, 한가롭고 느긋함을 뜻하는 일본말입니다. 좋아하는 단어였는데, 잊어버리고 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주어진 일을 기간내에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세팅이 되어 그런 용도로만 쓰여졌습니다. 느긋함이 용납될 리가 없죠. 자신이 느끼는 감각을 지긋하게 응시하여 그것을 어떤 가치로 만드는 습관 같은 것은 전혀 장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키나와가 건네는 말인 '난쿠루나이사' 가 가슴에 와닿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표준어로 바꾸면 난또까나루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난또까' 정신 - 머, 어떻게든 되겠지 - 은 지금 우리나에도 도입이 되기 시작했고 나도 회사에서 이 정신으로 업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형님들도 이제 좀 바뀌어야 됩니다. 삶을 윤택하게 살려면 언니들의 감수성과 공감 능력과 배려와 느긋함을 배워야 합니다. 아니면 차라리 여자로 태어나든지...... 남자들 보단 여자들이 훨씬 세상을 잘 이해하고 잘 느낍니다. 사는 것이 각박하지 않고 풍부합니다.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숭례문학당의 서평독토 송년회에 저자 네분이 모두 오셨다. 책의 저자를 만나는 것은 친구 갑수 이래로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신기했다. 오가다 만날 그냥 평범한 여성분들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만난 저자들은 훌륭한 하모니와 논비리를 보여주었다. 책을 읽고 책의 저자와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주선하신 김민영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삶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장소들, 오래된 것을 재발견하고 드러내는 방식들, 새로운 유행에 휩쓸리지 않은 일본다운 삶의 풍경이 우리의 마음을 미세하게 움직인다. 이 도시의 한쪽에서는 급격한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이어져온 삶의 방식이 있다. (p.24)

 

 

 

신혼집을 도쿄 시나가와 교외에 잡았습니다. 문을 열면 조그만 실개천이 흐르고, 그 주위로 벗꽃나무들이 줄이어 있고, 고풍스런 다리가 있으며, 그 다리를 건너면 이름 모를, 그러나 꽤 오래된 신사가 있으며, 집 뒤의 골목길은 책에도 나오는 아주 유명한 시타마치입니다. 그런 곳에서 신혼의 한 때를 보내고 또 아이도 낳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절정의 시기를 보낸 탓에, 일본을 생각하면 언제나 흐뭇하고 그립습니다.

 

 

 

언니들의 책으로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갑니다. 비록 언니들의 감성을 따라가긴 벅차지만, 언니들이 거닐었던 야나카와 칸다와 진보쵸의 시타마치를 언니들의 시선을 따라 거닐어 보고 싶습니다. 유쿠리유쿠리 오키나와는 제목부터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오키나와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자, 나를 오키나와로 유혹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누구랑 가나요? 40대 아재들은 사양입니다. 가족과 함께? 아마도 아이들과 아내가 거부할 것 같습니다. 혼자 가기는.... 음, 아무래도 많이 처량합니다. 같이 갈 애인을 구해야 하나요? 이건 오키나와로 떠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