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 이시백 이한구 <당신에게, 몽골>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평소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마음의 어떤 여유도 없이, 저녁이면 녹초가 될 정도로 일했습니다. 이 정도면 '열심히 일한 당신' 축에 낄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떠납니다. 근데,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듯, 떠나 봤자 겨우 며칠 입니다. 일주일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천금같은 그 시간을 대충 때울 수는 없습니다. 아주 알차고 빡빡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잠은 되도록 안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다음 일정을 향해 떠나는..... 그래서 다녀오면 녹초가 되어버리고 마는, 그런 여행을 했더랬습니다.
고비(Gobi)는 그렇게 '없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럼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곳에 뭘 보러 가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곳에 가면 무얼 하면 좋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사람은 무얼 해야 할까' 이런 불온한 질문이 가슴에서 뭉클거린다면 서둘러 짐을 꾸러 고비로 날아가야 한다. (p.23)
이쯤 되면 평범한 한국 사람이 몽골에 간다는 건 사치입니다.
저자인 소설가 이시백은 이 사치를 누리고 삽니다. 볼 것 없는 거 보러 몽골행 표를 끊기를 한번 두번 하다 그만 몽골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틈만 나면 몽골을 꿈꾸고 입만 열면 몽골 이야기를 늘어 놓는 '몽골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생기신 것도 몽골리안... 앗, 지송합니.... 그의 마지막 바램은 고비 한가운데 주막을 차리고, 양과 염소 몇 마리에 말도 기르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월말이면 적금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타서 낙타를 사자~~~
그런 작가가 몽골의 기행문을 적었습니다. 붉은 영웅의 도시 '울란바타르', 어머니의 바다 '홉스굴', 천상화원의 고산 '항가이', 무지개가 뜨는 나라 '솔롱고스', 몽골인의 흰 음식 '아롤', 바람이 쌓은 모래언덕 '홍그린 엘스' 등, 39개의 키워드로 몽골을 소개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고비 사막, 심심해서 죽어 버릴지도 모를 비얀자크, 헬멧이 없으면 타박상을 입을 정도로 쏟아지는 별들과 가도 가도 사람 구경 할 수 없는 끝없는 초원.... 솔깃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쥬게르, 쥬게르! 괜찮아, 괜찮아. 길을 잃어도 쥬게르, 두 끼를 굶어도 쥬게르, 달리던 차에 바퀴가 빠져도 웃으며 쥬게르를 외칩니다. '쥬게르' 편에서는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왜 쥬게르인지 담박에 알게 됩니다. 본업이 소설가인지라 말빨이 아주 죽입니다. 보면 빠져드는 이한구 사진가의 사진과 함께 책은 그냥 술술술~~ 넘어갑니다.
좀 찾아보니 남한의 15배가 넘는 면적에 인구는 고작해야 300만 정도랍니다. 감이 잘 안오지요? 몽골의 인구 밀도를 울나라에 적용하면 남한 인구가 17만명 정도라고 하는 군요. 크흑. 게다가 수도인 울란바타르에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니, 수도를 벗어나면 사람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전통적으로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습관도 아주 자연스럽다 하겠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매력을 언제쯤 느껴볼 수 있을까요? 저자가 추천하고 몽골 여행 코스를 보니 아무리 짧아도 2주는 걸려야 됩니다. 제대로라면 1달은 족히 걸리겠죠. 지금처럼 밥벌이 하면서는 무립니다. 그래도 짬을 내어 그 매력을 꼭 한번 경험하고 싶네요. 몇 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중국 내몽고를 거쳐 몽골을 경유하여 바이칼호로 가는 느긋한 기차 여행도 아주 끌립니다. 머, 상상의 나래가 어디까지 가든 그건 내 맘 아니겠어요?
아마도 몽골에 한 번도 안가본 이는 있어도 한 번 가본 이는 없을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몽골의 매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책입니다. 내가 몽골에 갈 수 있을 때 쯤이면, 저자는 고비에 주막을 내었을까요? 주인장과 만나 당신 덕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며 타르박 구이에 마유주 한 잔 나누는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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