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년 전쯤일까요, 회사에 LEED 열풍이 분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주관하는 새로운 부서가 생겼고, 회사도 LEED 건물을 짓겠다고 발벗고 나섰으며, 직원들에게는 LEED 자격증을 따라고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사우디에 지은 건물이 인증을 받았고, 그 후 국내에도 몇 개의 건물이 LEED 인증을 받았습니다.
LEED는 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의 약자로 세계에서 가장 인증 받는 친환경 인증 시스템입니다. 부지 관리, 에너지 절감, 물 사용 절감,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자재, 실내 환경, 독창적인 설계 등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깁니다. 건축물을 덜. 해.롭.게. 지으면 이 인증을 받습니다. 환경에 있어서 가장 야만적인 분야인 건축도 친환경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환경에 대한 책과 다큐멘타리를 봤습니다. 꽤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좀 더 공부를 해볼 요량으로 이 두꺼운 책을 샀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혹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지금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책의 제목인 Drawdown은 온실가스가 최고조에 달한 뒤 매년 감소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말한다고 합니다. 부제는 <기후변화를 되돌릴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계획>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모여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을 궁리했고, 그 결과가 이 책입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국가가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일들이 나와 있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1. 기후변화를 되돌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온실가스를 감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순위별로 매겼다. 1위는 냉장고와 에어컨에 들어있는 냉매 관리, 2위는 풍력발전, 3위는 음식물 쓰레기 최소화, 4위는 채식 위주의 식단, 5위는 열대림의 복원, 6위는 여학생 교육, 7위는 가족계획, 8위는 태양광발전단지, 9위는 나무와 가축을 함게 키우는 임간축산, 10위는 지붕형 태양광발전이다.
2. 여성은 지구의 미래다?
위의 순위에서 눈길을 끄는 건 여학생 교육과 가족 계획이다. 무려 6위와 7위다.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일수록 더 적게 출산하고, 더 건강한 아이들을 낳으며,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능력도 더 커진다. 2050년의 인구는 97억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저소득 국가에서 가족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의 이야기다. 기후변화는 성중립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여성의 권리와 복지를 개선하는 건 지구의 미래가 나아지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3. 풍력발전이 대세라고?
골드만삭스는 "바람이 가장 저렴한 새로운 전력 설비"라고 딱 잘라 말했다. 지금 비용도 태양 발전의 절반 정도다. 지금 3~4퍼센트 수준에서 2050년까지 21.6퍼센트로 끌어올리면 84.6기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냉매관리에 이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2위다. 이것도 보수적인 추정이라고. 얼마 지나지않아 산이나 바다 곳곳에 서서 돌아가는 터빈의 날개를 볼 수 있겠네.`
4. 기후변화에 대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고기를 적게 먹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이며 게다가 아주 높은 순위로 효과적이다. 채식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기를 가끔 먹는 별미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고소득 국가에서 최대 35퍼센트가 소비자에 의해 버려진다고 한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낭비되는 식량이 거의 없다고.
5. 그래서 원자력은 폐기해? 말어?
유럽과 미국은 원자력을 폐쇄, 해체하고 있으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있다. 원자력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이 책에서는 분명하게 말한다. 후회막급한 해결책이라고. 이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미하마, 뤼상스 등에서 호회스런 일들이 발생했다. 원자력의 폐기물 또한 골치아픈 존재다. 세계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2030년까지 13.6퍼센트로 증가하다 2050년에는 12퍼센트까지 서서히 감소할 것으로 이 책에서는 추정했다. 독일은 이미 완전 해체를 선언했다.
6. 네덜란드가 자전거 도시를 만드는데 걸렸던 시간은?
울나라는 아직까지 자동차가 다니기 편리한 나라다. 일본이나 유럽은 걷거나 자전거가 다니기 편리한 나라다. 우린 어쩌다 미국을 따라갔을까? 걷기, 자전거 타기엔 너무 불편한 나라다. 고속도로만 주구장창 만들게 아니라 자전거 도로를 만들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안 듣는다.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타기 편한 도시는 굳이 환경적으로 따지지 않더라도 훌륭하다. 네덜란드는 단 10년 만에 자전거 도시의 메카가 되었다.
7. 텃밭 가꾸기는 가장 강력한 대안이다?
아주 조금의 수고를 들이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일을 할 수 있는데 바로 텃밭 가꾸기라고 한다. 어엿한 점심 재료를 얻을 수 있고, 또 이 재료들은 가장 지역적이기까지 하다. 텃밭을 가꾸는 동안 나의 근심은 사라질 것이며, 이웃과 나를 이어줄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무엇을 할 만큼 쓸모가 있고 근사한 존재라고 느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솔깃한 구절이었다.
8. 초식동물을 키우면 풀이 자란다?
이 책의 '매력적인 미래 에너지'편에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북쪽의 춥고 버려진 땅에 초원을 만들어내는 초식 동물을 기르자는 아이디어였다. 저자는 '매머드 스텝지대 재생'이라고 이름 붙였다. 실제로 해본 사람이 있다고. 오늘날 사육되고 있는 동물은 약 10억 톤 정도인데, 대부분 공장의 우리 안에 갇혀 산다. 건강하지 못한 고기다. 버려진 땅을 회복하고 건강한 동물도 키우고.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100퍼센트 책임을 지고, 남 탓하기를 그만두기로 한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이루고, 혁신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계로의 초대장으로 간주한다. 창의력과 연민, 천재성을 일깨우는 길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의 의제도, 보수의 의제도 아니다. 인간의 의제다. (p.17)
몽골 유목민들이 야채는 하나도 먹지 않고 고기만 먹는데도 건강한 까닭이 진짜 풀을 먹는 고기를 먹어서 그렇다는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먹는 고기는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건강하지 않는 가축을 기르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책에서는 온실가스의 50퍼센트가 가축과 가축 관련 산업에서 나온다고 했다)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사료용 콩을 재배하려고 또 어마어마한 숲이 사라집니다.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인간의 이기심에 새삼 놀랍니다.
책의 내용이 훌륭해서 채식을 하는 딸에게 소개해줬습니다.
들이야, 이 책 한 번 봐봐. 환경에 관한 책인데, 다른 환경책과는 다르게 해결책이 나와 있어.
어떻게 하라는데요?
고기 적게 먹고, 음식 남기지 말고 다 먹고, 걷기 많이 하고, 자전거 타고, 공부하고, 고추 심으래.
다 아는 건데요. 근데 하나도 안하잖아요.
컥. 맞습니다. 들이가 정곡을 꼭 집네요. 세계의 현명한 사람들이 솔루션을 제시해주지만 그걸 실천하는 건 우리 몫입니다. 저자도 이 책을 읽는 가장 논리적인 방법이 책을 활용해 어떻게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래가 어떤 사회로 변할지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이건 확실합니다.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이, 우리의 자식들의 자식들이 자신들의 써야 할 자원을 우리 세대가 모두 써버렸다고 원망할 상황이 분명히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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