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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34

산티아고 순례길을 내려놓습니다 : 김응용 <그냥, 2200Km를 걷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툴룽에서 스페인의 포트부로 이동한 적이 있습니다.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갔었는데, 남부 프랑스의 해안을 따라 가는 기찻길이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골과 바다가 묘하게 오버랩된 매력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언젠가 이 길을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프랑스의 남부 지역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흐도 아를에 머물렀다고요.  포트부는 발터 벤야민이 나치를 피해 피렌체 산맥을 넘어 겨우 프랑스를 탈출했으나 스페인의 프랑코 정부가 입국의 거부하자 희망을 잃고 자살한 곳입니다. 예전에 어떤 건축책에서 이 곳에 있는 발터 벤야민의 기념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꽤 오래 마음에 남아서 버킷 .. 2024. 9. 7.
사회주의 국가 수도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 평양 : 박원호 <북한의 도시를 미리 가봅니다> 3년 전인 2018년 4월에 재인이 아재와 정은이 엉아가 만났습니다. 악수도 하고 포옹도 했더랬습니다. 도문다리에서는 둘이서 속닥속닥 이야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의 봄이 이렇게 불쑥 찾아왔다고 기뻐했습니다. 끊어진 철도와 다리를 다시 놓고, 개성공단은 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변할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곧 정은이 엉아가 서울에 올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봄을 뒤로 하고 남과 북 사이는 다시 냉랭해졌습니다. 뭐가 맘에 안들었는지 삐져서는 서로 말도 안합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미국 말을 잘 들어야 하는 남쪽과 미국 말은 무조건 안들어야 하는 북쪽의 정치적 입장이야 그렇다쳐도 서로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철도와 도로 사업, 관광단지와 공업단지 조성 같은 것은 얼마든지 할.. 2021. 8. 8.
여행은 타인이 된 나를 연인으로 맞아들이는 일이다 : 조문환 <괴테를 따라 이탈리아 로마 인문 기행> 여행은 타인이 된 나를 연인으로 맞아들이는 일이다 : 조문환 하동의 악양 면장님을 지낸 분이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책을 냈단다. 그런데 이 양반, 시인이고 작가란다. 지금은 하동에서 지역 여행사를 하고 있고. 책보다 사람이 궁금했다. 동네 책방에 강의를 온다니 저자의 책을 사서 미리 읽었다. 저자가 겪고 느낀 이탈리아가 궁금했다. 가는 비 사이로 언덕 위의 로툰다가 내 손에 잡힐 듯하였다. 한폭의 그림 같은 로툰다, 이와 같은 것들을 두고 픽처레스크한 건축이라고 한다. 이는 중세풍의 저택에서 볼 수 있듯이 비대칭적 형태로서 재미있고 변화가 풍부한 건물을 가리킨다. 좋은 건축물은 그려보면 안다. 사람도 그림이 되는 사람이 있다. 아름다운 것은 그림이 될 수 있다. (p.53) 서양건축사를 공부할 때 자주 .. 2020. 7. 27.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여정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여정이다 : 김영하 뉴욕에서 살던 어느날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여행가고 싶다." "지금도 여행 중이잖아."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런 거 말고 진짜 여행." (p.193) 독일을 여행하던 중 베를린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나는 팔자 좋은 여행자였고, 그는 딸아이의 면접때문에 먼 곳까지 왔습니다. 같은 고향에 있으면서도 생전 연락 한번 안하다가 우연히 독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굳.이. 연락을 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돔이 보이는 슈프레 강가에서 만났습니다. 하도 오랜만이라 좀 어색했습니다. 음악을 하는 아이의 입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간의 사정도 오고 갔습니다. 쓴 독일 커피를 다 마셔갈 즘 그가 책.. 2019. 12. 5.
독일 여행을 준비하며 : 리처드 로드 <세계를 읽다, 독일> 독일 여행을 준비하며 : 리처드 로드 하이고, 유럽 출발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이제 곧 독일로 출발인데, 아직 독일 지도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겨우 도시 몇 개가 어디 붙었는지 정도밖에 모릅니다. 여행에 가려고 하는 도시만 붙들고 검색 쪼금 했습니다. 독일 간다고 하니 경험이 있는 민주 아버지가 이 책을 줬습니다. 드레스덴이 어디 붙었는지, 독일 사람은 불친절한지, 뭐가 맛나는지 정도는 알고 가야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 할텐데요......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드레스덴, 그리고 체코를 거쳐 뮌헨으로. 일단의 여행 경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도, 퀼른 대성당도, 슈트트가르트 벤츠 박물관의 육중한 콘크리트 매스도 보고 싶지만 다 경험할 수 없다. 어느 것을 넣고 어느 것을 빼는 결정에 머리가 지끈지.. 2019. 6. 7.
가우디 건물 세 개 봤으니까 이제 떠나야지 : 오영욱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가우디 건물 세 개 봤으니까 이제 떠나야지 : 오영욱 # 바르셀로나의 카페 바르셀로나의 많고 많은 카페 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했던 곳은 산 이우 광장에서 프레데릭 마레스 미술관의 작은 중앙 정원을 통해 이르게 되는 에스티우 카페였는데 봄날의 선선한 공기와 내리쬐는 햇살과 정원의 오렌지 나무가 고풍스러운 파티오와 잘 어울렸다. 바르셀로나 역시 많은 유럽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그 기원을 로마 제국에 두고 있다. 옛 로마의 성벽 위에 앉아 그다지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렇다고 무덤덤하지도 않게 현재를 보내는 것이다. (p.128) 사진 : 에스티우 카페 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lanbcn&logNo=221325152954&proxyRefere.. 2019. 5. 28.
그곳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요? 그렇담 정말 가볼 만하겠군요 : 오소희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그곳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요? 그렇담 정말 가볼 만하겠군요 : 오소희 라오스라는 나라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건 친구 갑수 이라는 책을 만나고부터 입니다. 그 속에 펼쳐진 라오스는 천국 그 자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몽상가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했겠습니까. 그 뒤로 라오스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차리는 게 꿈이 되었고, 그 꿈을 지인들에게 떠벌리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의 메콩강, 태국의 카오산로드, 미얀마의 바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그리고 라오스와 같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러 나라들은 가보기 전에는 죽지 못하는 저의 버킷리스트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껴두고픈 곳은 역시 라오스입니다. 가난하지만 낙천적이고, 욕망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 말이죠. 일상에서 잠시 멈춰선다면 저에게 그곳.. 2019. 5. 3.
인생은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인생은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이탈리아에 오래된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가난한 남자가 매일 성당에 가서 위대한 성인 앞에서 기도하며 애걸했다. "성자님. 제발, 제발, 제발..... 복권에 당첨되는 은총을 내려주소서." 이 탄원은 몇 달간 계속되었다. 마침내 격분한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며, 가난한 남자를 내려다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들아. 제발, 제발, 제발..... 복권이나 사거라." (p.268) 책의 주인공 리즈는 30대 초반의 저널리스트입니다. 번듯한 남편도 있고,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뉴욕에 집도 있습니다. 주위에서 보면 꽤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근데 정작 본인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커녕 사는 게 고통입니다... 2019. 1. 20.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 오소희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 오소희 여행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 새로운 곳에 가서도 거울을 보듯 '나'만을 보는 것. 2단계,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3단계,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 4단계,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 1단계에 있는 여행자는 불만이 많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잠자리는 불편하며, 내 습관과 취향이 무시되는 것이 불쾌하다. "역시 김치만한 음식이 없고 한국만큼 편리한 곳이 없어."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와, 투자한 비용과 남겨진 추억 사이를 저울질한다. 누군가 "여행이 어땠어?" 라고 물으면, 추억을 부풀리고 목소리를 높이며 간신히 저울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2단계에 있는 여행자는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한국에 '없는.. 2018. 12. 15.
선생의 책도 나의 답사도 아직 현재 진행형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10 서울편 1, 2> 선생의 책도 나의 답사도 아직 현재 진행형 : 유홍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처음에 이 책이 나왔을때 손에 들고 남도에 갔던 게 벌써 이십여 년 전입니다. 아직 아내가 되기 전의 아내에게 꼬임을 당해 땅끝마을에 다녀오고, 강진땅을 둘러보고 영랑 생가에 가고 해태식당에 밥을 먹었더랬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남도에서 제주로 남한강으로, 울나라 땅을 굽이굽이 돌고 금강산도 보고 일본을 거쳐 이제 서울편이 나왔습니다. 유홍준 교수도 강진과 해남 땅끝에서 시작한지 햇수로 25년 만에 한양에 입성하자니 감회가 새롭다고 하셨습니다. 덩달아 이 책을 읽는 저도 지날 날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알면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위의 저 구절을 온전히 실감해주는 .. 2018. 12. 8.
스케치북과 함께한 한 청년의 통과의례 : 리모 김현길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 스케치북과 함께한 한 청년의 통과의례 : 리모 김현길 여행은 너무 먼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굉장히 행복하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청년이 있었다. 한때는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대를 갔고,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삼성전자에 취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잘못되어 가는 걸 깨닫는다. 계속되는 야근과 밤샘, 자신의 생활이 없는 삶, 다른 이는 행복하게 사는데 왜 나만 이토록 불행한거지?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걸까? 오랜 고민 후, 그는 기득권을 포기하기로 한다. 3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그는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그동안 피폐해지 자신을 치료하기로 한다. 그는 드로잉북 앞에 앉았을 때.. 2018. 11. 1.
내 생애 아드리아 바닷가를 볼 수 있을까? : 이정흠 <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 내 생애 아드리아 바닷가를 볼 수 있을까? : 이정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중 오직 한 편만 고르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를 꼽습니다. 아름다운 아드리라해를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사나이들의 모험,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라며 온갖 후까시를 잡는 허당끼의 포르코,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 마담 지나와의 아련한 사랑, 그리고 카토 토키코의 오리지날 사운드트랙까지..... 남자의 로망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어, 그런데 마담 지나가 살고 있는 그 아름다운 아드리아 바닷가는 어디 있나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와 맞은 편 발칸 반도 사이의 바다를 아드리아해라고 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지만, 그 풍경은 아무래도 발칸의 동유럽 어디쯤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2018. 9. 5.
나의 일상과 가장 먼 곳 : 김유진 <어쩌다 한달 모로코> 나의 일상과 가장 먼 곳 : 김유진 1. 여행다운 여행을 떠난지가 꽤 오래되었다. 고 느껴져서 돌이켜보니, 인도 여행을 다녀온지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2년도 안된 인도 여행은 전생의 일인 듯 기억 저편에서 까마득하다. 인도에서 보낸 시간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그런가. 그 도로가 고집스러워 보인 이유는 나이 스물 여섯에 졸업도 안하고 취업 생각도 없으며 심지어 대책도 없으면서 유럽은 가겠다는 고집의 내가 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겨 우겨 간 유럽에서 기어코 꽉 찬 달을 두 번이나 만났다. 그리고 오게 된 모로코는 내 꿈의 나라였고, 환상의 나라였다. (p.67) 2. 기억 저편에 있는 인도에서의 시간을 꺼집어내어 활자로 옮겨야 진정한 나만의 기록이 될텐데, 여태 미루.. 2018. 6. 9.
마음이 스산하거든 여기로 떠나리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 마음이 스산하거든 여기로 떠나리 : 유홍준 경북 영주에 아내의 절친이 살았다. 영주하면 부석사가 아닌가. 안양루에 보는 풍광이 울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유교수가 말씀하신 그 부석사말이다. 부석사를 지나 꾸불꾸불 고개를 넘어 한참을 가다보면 남대리라는 동네가 나온다. 진짜 산골짝 동네다. 거기에 아내 친구의 삼촌이 집을 짓고 살고 계셔서 몇 번인가 놀러 갔더랬다. 남대리에서 또 그 만큼의 고개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한쪽은 아름다운 길 영춘가도가 있는 충청도 단양의 영춘면으로 가고, 다른 한쪽으로 가면 강원도 영월의 김삿갓 묘소가 나온다. 경상도와 충청도, 강원도가 만나는 곳이다. 당시만 해도 오가는 차를 구경하기 힘들었던 그 길을 오래된 누비라에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을 데리고 열심히 다녔었다. 주말.. 2018. 3. 25.
꼬질꼬질 희희락락 그리고 뭉클함 : 박민우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꼬질꼬질 희희락락 그리고 뭉클함 : 박민우 훈자는 반년 장사다. 봄, 여름, 겨울. 이렇게 딱 세 계절이 있을 뿐이다. 시월부턴 눈이 쌓이고 길이 언다. 가을이 너무 짧아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한겨울 훈자는 그래서 텅텅 빈다. 많은 이들이 도시로 가 겨울을 난다. 봄 여름 바짝 벌어야 하는데, 오월의 식당엔 공짜 살구를 씹는 여행자뿐이다. 장사가 안되면 어디든 지옥이다. 안산의 치킨집도, 신촌의 호프집도, 훈자도 지옥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건 의미가 없다. 여행자가 즐거운 건 얄팍해서이다. 속속들이 안다면, 해맑을 수 없다. 명동에서, 인사동에서 흥분한 외국인 여행자들이, PC방의 실직한 50대 사연을 알 필요가 없다. 1백 장의 이력서를 돌리고도, 2백 장, 3백 장 이력서를 더 써야 하는 젊.. 2017. 12. 12.
그는 여행이 생활이고 나는 생활이 여행이다 : 유성용 <여행생활자> 그는 여행이 생활이고 나는 생활이 여행이다 : 유성용 꿈을 꾸었다. 낯선 곳에 나는 서 있었다. 그러나 내 기억 한 켠에 머물러 있는 그 어디쯤이다. 그 곳은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이었고, 아부다비 시내 거리의 여인들이 있는 뒷골목이기도 했다. 호주의 앨리스스프링스 아보리지널이 사는 어느 곳이었고, 난징의 현무호 공원 어디쯤이기도 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그저 주위를 바라만 보고 있다. 나는 길을 잃었다. 해가 미처 뜨기 전에 일터로 나간다. 추위를 견디며 일을 한다. 해가 지고 조용해지면 일을 마치고 나의 숙소로 돌아온다.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나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낯설기만 하다. 내가 어디쯤 왔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득하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지만, 나는 여전히 길을 잃.. 2017. 11. 27.
나는 셰릴처럼 내 안의 비밀을 찾을 수 있을까?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나는 셰릴처럼 내 안의 비밀을 찾을 수 있을까? : 셰릴 스트레이드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p.549) 아버지의 폭력과 가난으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낸 여인이 있습니다. 1968년 생인 그는 작가를 꿈꾸기도 하지만 폴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열아홉살에 결혼을 합니다. 행복한 시절을 잠시 보내기도 하지만, 자신의 희망이자 전부였던 엄마가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급속하게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일상은 망가지고,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급기야 마약에도 손을 대며 남편과.. 2017. 11. 19.
떠난 자 그리고 기록한 자 : 오영욱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떠난 자 그리고 기록한 자 : 오영욱 포에니 전쟁 당시 한니발이 로마로 쳐들어갔던 길을 따라 야간열차와 급행열차를 타고 두 개의 산맥을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이탈리아 중심부까지 진격했다. 코끼리가 넘어간 알프스를 침대칸의 이불 속에서 눈만 빠끔하게 내놓은 채 경치를 감상하며 무리 없이 지나쳤고 밀라노의 역내 카페에서 누마디아에서 온 잘생긴 남자가 자기 네 집으로 자러 가자고 했던 추파를 받아보면서도 나는 마치 애꾸눈 장군이 된 듯했다. 하이라이트는 로마행 기차에서 나보다 목 하나씩은 더 크고, 음모만 숨기듯 골반에 간신히 걸친 빽바지를 입고, 하나같이 삐쩍 마르고 가슴이 봉긋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패션모델들이 나의 전후좌우에 포진하고 앉아 그녀들의 향긋한 체내음에 반쯤 취했던 일이다. 이런 게 행복이 아.. 2017. 7. 22.
딸, 얼른 짐 싸자!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교토의 역사, 교토의 명소 편> 딸, 얼른 짐 싸자! : 유홍준 1. 광륭사 (廣隆寺, 코우류우지) 유홍준 교수가 광륭사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을 담은 사진 중 최고의 명작이라 생각하는 오가와 세이요의 흑백사진. 사진 출처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8949 나의 교토 답사기가 맨 먼저 찾아갈 곳은 광륭사다. 광륭사는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일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신라에서 보내준 것으로 전하는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너무도 비슷하여 일분미술사에서는 도래 불상의 상징으로, 한국미술사에서는 사실상 삼국시대 불상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 국보 제1호의 영예를 안고 있으니 한국.. 2017. 7. 1.
언젠간 나도 가보고 말테얏!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언젠간 나도 가보고 말테얏! : 빌 브라이슨 함메르페스트 올해는 태양의 활동이 왕성하여 오로라를 보기에 아주 좋은 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오로라를 보려면 하늘이 맑아야 하는데, 노르웨이 북부에서 맑은 하늘은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말도 이어졌다. "오로라를 보려면, 적어도 한 달은 잡고 오셔야 해요!" "한 달이나요?" "최소한 한 달이죠." 한 달이라. 유럽에서 가장 춥고, 어둡고, 오지인 곳에서 한달.... 이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 했지만 모두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덜컹이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 이제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다. (p.27) 파리 퐁피두 센터 같은 건물에 대해 정말 맘에 안 드는 점은 그저 과시하기 위한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파리는 이런 건물로 .. 2017. 5. 8.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 이시백 이한구 <당신에게, 몽골>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 이시백 이한구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평소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마음의 어떤 여유도 없이, 저녁이면 녹초가 될 정도로 일했습니다. 이 정도면 '열심히 일한 당신' 축에 낄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떠납니다. 근데,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듯, 떠나 봤자 겨우 며칠 입니다. 일주일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천금같은 그 시간을 대충 때울 수는 없습니다. 아주 알차고 빡빡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잠은 되도록 안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다음 일정을 향해 떠나는..... 그래서 다녀오면 녹초가 되어버리고 마는, 그런 여행을 했더랬습니다. 고비(Gobi)는 그렇게 '없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럼 뭐가 있느냐고.. 2017. 4. 14.
형님들의 여행법은 없다 : 최예선 심혜경 손경여 김미경의 언니들의 여행법 형님들의 여행법은 없다 : 최예선 심혜경 손경여 김미경의 언니들의 여행법 함께 차를 마신다는 것은 그 시간을 공유하는 것 만이 아니다. 같은 향과 온기 속에서 혼곤하게 적셔진 느낌, 함께 목욕을 한 감각적인 공감대가 생긴다. (p.173) 올 여름에 친구 넷이서 인도 여행을 갔더랬습니다. 직장인 갈 수 있는 최대치의 기간인 10일 일정으로 계획을 세우고, 6개월 정도를 준비해서 남부 인도를 돌아보는 여행이었습니다. 일과 가족에서 해방되어 들뜬 기분으로 출발하였지만, 그 기분은 딱 이삼 일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경치도, 이색적인 음식도 40대 중년의 아저씨들에겐 더 이상의 새로운 감동을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낯선 도시와 낯선 사람이 주는 감흥은 아마도 그 사람이 기지고 있는 감수성에 비례.. 2016. 12. 10.
세계사의 진정한 승자, 인도 : 이옥순의 인도는 힘이 세다 세계사의 진정한 승자, 인도 : 이옥순의 인도는 힘이 세다 아부다비의 르와이스 사막에서 집을 지을 때였습니다. 노동자의 대부분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혹은 인도, 네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솔하고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급 친구들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보통은 인도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던 스탭들도 역시 인도 친구들이 많았고, 그 중에 이스마엘이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그래서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바쁜 공정으로 결국 인도에 가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게 두고두고 아쉬웠습니다. 근데 올해 초에 대원이 형이 데리고 있던 친구 중에서 하나가 결혼을 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어, 그래, 축하해.... 에서 이야기가 점점 발전해가더니 우리 한번 .. 2016. 7. 17.
반짝반짝 빛나는 모국어의 향연 : 김훈의 자전거 여행 반짝반짝 빛나는 모국어의 향연 : 김훈의 자전거 여행 그러므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길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올 뿐 아니라 기어의 톱니까지도 몸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내 몸이 나의 기어인 것이다. 오르막에서,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과 허파는 바퀴와 길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땅에 들어붙어서, 그것들은 함께 가거나, 함께 쓰러진다.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서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자전.. 2016. 6. 6.
시베리아에 새겨진 인간의 뜨거운 흔적 : 하영식의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 시베리아에 새겨진 인간의 뜨거운 흔적 : 하영식의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 데카브리스트 혁명 1825년 12월 러시아 제국의 일부 청년 장교들이 입헌군주제의 실현을 목표로 일으킨 혁명. 여기서 데카브리스트란 개혁을 부르짖으며 혁명을 일으켰던 청년 장교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 이 혁명을 진압한 니콜라이 1세는 자유주의 운동에 위협을 느껴, 전제 정치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 위키백과 반란이 진압된 뒤 봉기의 지도자들은 개인적으로 겨울궁전에서 황제와 개인적인 면담을 가졌다. 체포된 지도자들에게 황제는 언제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수사에 최대한 협조만 해주면 당신 목숨을 살려 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황제의 발 앞에 매달려 울면서 목숨을 구걸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장교들은 혁명정신으로 "그렇게 말하.. 2016. 4. 3.
옥수수 밭으로 변한 교사, 벼논으로 변한 운동장 : 박도의 항일유적 답사기 옥수수 밭으로 변한 교사, 벼논으로 변한 운동장 : 박도의 항일유적 답사기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 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 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음은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 '아리랑'을 썼고 털모자 눌러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강 건너 개 짖는 소리 아직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번 타.. 2016. 2. 18.
도심속의 여유, 도심속의 불교 : 임연태의 행복을 찾아가는 절집 기행 도심속의 불교, 도심속의 여유 : 임연태의 행복을 찾아가는 절집 기행 나팔수씨와 지혜장 부부가 절집 여행을 떠난다. 처음엔 웬지 어색하지만, 그들 부부를 따라 한곳 한곳 가다보면 전혀 몰랐던 절집도 어느듯 옆에 있었던 것 같이 친근감있게 다가온다. 책의 표지 사진은 시인 백석과 기생 김영한의 절절한 사연이 있는 대원각이다. 지금은 길상사의 극락전이다. # 1. 봉은사 "왜 절에서는 절을 세 번 하는 거야?" "삼보에 귀의한다는 의미지. 불교에는 세 가지 보배가 있는데, 부처님을 불보佛寶,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보法寶, 스님들을 승보僧寶라고 하거든. 이 삼보에 경배하고 의지한다는 의미로 절을 세 번 하는 거야" "그럼 여보는?" "같을 여如에 보배 보寶, 늘 보배같은 존재가 여보如寶다 이거야~~~" 추사의 .. 2016. 1. 23.
한양의 지리와 건축과 역사를 한방에!! : 유영호의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한양의 지리와 건축과 역사를 한방에!! : 유영호의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에서 북소문인 창의문彰義門까지 한번 걸어보리라 진즉부터 맘 먹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어느 일요일 아침, 이불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한양도성이 한바퀴에 18.6Km 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숙정문 ~ 창의문 코스는 아마도 가장 보존이 잘 된 구간일겁니다. 왜? 개방을 안했으니까.... 사실 그 덕에 지금도 남대문 북대문의 그 북대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고.... 그렇게 40년간 숨어있다가 사람들이 찾은지 10년도 안된 숙정문입니다. 이 문에서 출발합니다. 삼청동 끝자락에서 좀 더 올라가면 숙정문 안내소가 나오고 거기서 좀만 가면 숙정문을 만날 수 있다. 정도전이 서울을 만들때 인의예지신.. 2016. 1. 3.
여행의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를 여행하는 방법 :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 여행의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를 여행하는 방법 :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과 독서.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는 게 인생 최대의 과제이고, 일주일에 한권 이상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 지금 일상의 과제인 저에게 이 두가지가 합쳐진 주제의 책이라면 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끌려서 그저 몇페이지만 스르륵 훑고는 바로 샀습니다. 근데 여행에서 책이라니요, 그것도 울 나라가 아니라 남의 나라에 가서.... 이해가 잘 안됩니다. 그 나라의 자연경관을 봐야 하고, 건축물과 사람 사는 모습도 봐야 하고, 그 나라 음식도 먹어야 되고, 현지의 친구도 사귀어야 되고, 무엇보다 비슷한 여행자들끼리 수다도 떨어야 되는데...... 책 읽을 시간이 있을라구요.. 2015. 11. 4.
내 마음의 속의 위로 : 유재현의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내 마음 속의 위로 : 유재현의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언제부터 인도차이나가 내 마음속에 기댈 곳이 되었을까요? 또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인도차이나에 가본 거라곤 막내 녀석이랑 둘이 앙코르와트에 며칠 다녀온 게 다인데요. 참 알 수 없는 일지지만,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혼자서 세계 여행의 루트를 그리는 공상을 하자면, 잠시 잊은 이웃 대만, 잉카의 고대 문명 페루의 마추픽추, 안나푸르나가 있는 네팔, 인도 북부의 라다크, 친구 야신이 사는 방글라데시의 슬픈 해변 콕스 바자르, 몽고의 더 넓은 초원인 중국 후룬베이얼과 만저우리, 고려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울란우데, 페르시아의 고도 바그다드 까페의 이라크 바그다드, 우즈벡.. 2015. 7. 17.